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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에너지 정책이 낭만인가

원전·재생에너지 비중 놓고 정권 눈치 보느라 오락가락
백년대계는커녕 5년에 단명
[곽인찬 칼럼] 에너지 정책이 낭만인가

문재인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야단을 많이 맞지만 나는 기본 방향엔 동의하는 편이다. 외환위기 나고 20년이 흐르는 동안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다. 소득 분포만 보면 오히려 군사독재 시절이 낫다. 민주화 이후 출범한 정부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양극화 해소라는 대의에서 보면 J노믹스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그런데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게 있다. 에너지정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주 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을 놓고 공청회를 가졌다. 에너지 백년대계를 뒷받침하는 밑그림이다. 그런데 엉성하기 짝이 없다. 탈원전정책에 장단을 맞추느라 짜맞춘 느낌이다. 기본계획이란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3차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부터 보자. 1차 계획은 2008년에 나왔다. 이명박정부 때다. 녹색성장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답게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11%로 쑥 올렸다. 2006년 재생에너지 보급률(2.24%)을 고려하면 과감한 목표다. 2차 계획은 2014년에 나왔다. 박근혜정부는 현실을 따랐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갑자기 끌어올리는 게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035년까지 11%를 유지하기로 했다.

문재인정부가 짠 3차 안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까지 30~35%로 높였다. 상식적이지 않다. 어떻게 5년 만에 목표치를 후딱 세 배나 올리나. 1·2차 계획을 세운 전문가들은 다 바보란 말인가. 에너지 청사진을 그리는 데 탈원전 이념이 끼어든 탓이다.

정작 원전은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했다. 산업부 보도자료를 보면 원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노후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원전을 짓지 않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의례적 내용만 있을 뿐이다. 2040년에 원전 비중이 몇 %가 될지 입을 다물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원전 비중은 주는 게 당연하다. 에너지 백년대계를 담은 기본계획안이라면 당연히 구체적인 수치를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전 르네상스를 추구한 이명박정부는 원전 비중을 2006년 26%에서 2030년 41%로 높였다. 그러다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이 났다. 그로부터 3년 뒤 박근혜정부는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29%로 낮추기로 했다. 같은 보수 정부이지만 원전을 보는 시각은 차이가 났다. 돌이켜 보면 신재생 11%, 원전 29%가 비교적 합리적인 수치가 아닌가 한다.

문재인정부가 원전 해체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했다. 뭐랄까, 어쩐지 생뚱맞은 느낌이다. 당장 급한 것은 원전 해체가 아니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건립이다. 위험천만한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부지에 임시 저장돼 있다. 몇 년 지나면 임시저장소가 꽉 차기 시작한다. 고준위 방폐장은 부지를 고르는 데만 12년이 걸린다. 정부는 공론화를 거쳐 2016년 11월에 고준위 방폐장 관련법을 국회에 냈지만 아무 진전이 없다. 탈원전도 좋고, 해체산업 육성도 좋지만 그보다 방폐장이 더 급하다.

모든 정책엔 정권의 색깔이 칠해진다. 하긴 그런 재미도 없으면 뭣하러 애써 정권을 잡겠는가. 그러나 어떤 정책은 정권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에너지정책이 그렇다. 한국은 외딴섬이나 다름없다.
기름 한 방울 안 난다. 땅은 좁고, 산은 많다. 낭만적인 에너지정책은 금물이다.

paulk@fnnews.com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