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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발생해서 대피해야 된대요. 우리집 댕댕이는 어떡하죠? [소소韓 궁금증]

이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13 09:29

수정 2019.04.13 09:29

(속초=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사동의 한 마을에서 발을 불에 그을린 강아지 한 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속초=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사동의 한 마을에서 발을 불에 그을린 강아지 한 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주, 시뻘건 화염이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를 집어삼켰습니다. 신속한 대응체계와 전국의 소방인력을 동원한 진화 덕에 불길이 비교적 빠르게 잡혔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산불 피해 지역민들의 일상 복귀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불길로 상처를 입은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화재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피해를 입은 동물들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미처 같이 대피하지 못해 온몸이 그을린 강아지들의 사진은 안타까움을 낳았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 가능한 대피소를 급히 찾는다는 이재민들의 글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동물권단체를 중심으로 반려동물 재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은 7일 관련 성명을 발표했으며,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 사회적협동조합)이 2017년 발간한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은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이 같은 논의가 이뤄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7년 포항에 발생한 지진으로 주민들의 대피가 이뤄졌을 당시, 반려동물 대피소 입장을 두고 갈등이 빚어진 적이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난 대피소 도입에 관한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었죠.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 재난 대피소,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을까?

재난 시 반려동물 대피 관련 공식 매뉴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재난 발생 시 비상대처요령에는 "봉사용 동물을 제외한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사진=국민재난안전포털 캡쳐]
[사진=국민재난안전포털 캡쳐]

이를 보다 더 자세히 서술한 '애완동물 대처방법' 페이지에는 "애완동물 소유자들은 가족 재난 계획에 애완동물 항목을 포함시켜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애완동물이 대피소에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재난 상황을 대비해 동물을 위한 계획을 자체적으로 세우라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지역 외부에 거주하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비상시 자신과 애완동물이 머물 수 있는지 알아볼 것', '재난으로 귀가하지 못할 경우 이웃이나 친구에게 애완동물을 돌봐달라고 부탁할 것', '담당 수의사나 조련사가 동물을 위한 대피소를 제공하는지 알아볼 것' 등이 국민재난안전포털이 설명하는 대처 방법입니다.

■ 재난 겪은 미국과 일본, '반려동물 구호' 이렇게 변했다

(속초=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사동의 한 마을에서 발을 불에 그을린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에 묶여있다. 2 /사진=연합뉴스
(속초=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일 오전 전날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진 속초시 장사동의 한 마을에서 발을 불에 그을린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에 묶여있다. 2 /사진=연합뉴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7일 '사람만 챙기는 국가 재난 대응, 이대로 안 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은 "현재 대한민국 재난 관리 시스템에 비인간 동물은 없고, 동물을 구조할 책임은 온전히 함께 사는 개인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강원 산불 현장에서도 동물은 국가의 구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행안부의 비상대처요령은 반려동물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국민의 안전에도 소홀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변화한 사례도 소개했습니다. 미국은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겪은 후 '반려동물 대피와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지방정부의 재난 대응 계획에 동물을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30개 이상의 주정부가 재난 발생 시 동물의 대피, 구조, 보호를 제공하는 법이나 계획을 갖게 됐습니다. 일본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재해 시 반려동물 구호대책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반려동물과 함께 피난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 대피소 함께 갈 수 없다면.. 현실적인 대응 방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산불을 계기로 지난 2017년 발간된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이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매뉴얼에는 재난 발생 상황에서 반려동물 보호자가 참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페이스북]
[사진=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페이스북]

반려동물에게 언제 어디서 누구나 인지가 가능한 '인식표'를 착용시킬 것, 반려동물의 독립된 피난 공간이 될 수 있는 '하드 케이지'를 준비할 것, 상세 프로필과 가족사진을 코팅해 케이지에 함께 보관할 것, 대문에 반려동물이 있는 집임을 표시하는 '펫 레스큐' 표지판을 붙여둘 것 등을 조언합니다.

그 외에도 최소 3~5일간 사용할 수 있는 물·사료·용품을 비축해둘 것, 반려동물의 기본적인 훈련과 올바른 식습관을 갖춰둘 것, 집안 가구를 쓰러지지 않게 고정해둘 것, 유사시 반려동물을 보호해줄 이웃과의 소통을 해둘 것 등의 대응책이 설명돼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위한 생존 배낭을 꾸리는 법도 상세히 소개됐습니다.

우리동생 사회적협동조합의 김현주 사무국장은 "상대적으로 재난에 관심이 낮은 한국에서 반려동물의 안전을 대비하는 내용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매뉴얼을 만들었다"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입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의 수는 앞으로 더 늘어갈 전망입니다.
인간이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예상치 못한 재해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재해상황 시 동물 구호에 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을 낳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산불이 남겨둔 우리의 '숙제'인 셈입니다.

#반려동물 #재난 #재해 #대피소 #강아지 #고양이

sunset@fnnews.com 이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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