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모자보건법 개정도 불가피

뉴스1

입력 2019.04.11 17:38

수정 2019.04.11 18:22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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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인 2019년3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폐지를 주장하는 시민과 존속을 유지하는 시민들이 맞불 기자회견 및 집회를 하는 모습 2019.3.8/뉴스1 © News1
세계 여성의 날인 2019년3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폐지를 주장하는 시민과 존속을 유지하는 시민들이 맞불 기자회견 및 집회를 하는 모습 2019.3.8/뉴스1 © News1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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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문제' 낙태허용 사유에 포함 가능성

(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규정에 대해 위헌 취지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재가 '2020년12월31일'로 개정시한을 제시한 만큼 대체입법이나 처벌 예외 사유를 확대하는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낙태를 일괄적으로 금지 및 처벌하는 형법 269조·270조와 낙태의 형사처벌을 면하는 예외 규정을 모자보건법 14조 및 동법 시행령 15조에 두고 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임신 24주 이내'인 임신부가 Δ본인 및 배우자가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질환 혹은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Δ본인 및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Δ강간이나 중강간에 의한 임신 Δ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간 임신 Δ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낙태를 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입법부는 형법을 고치거나 이미 위법성 조각 사유를 제시한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할 전망이다.

특히 헌재가 다수의견으로 모자보건법상의 낙태 정당화사유에 대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만큼 모자보건법의 개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모자보건법의 경우, 우선 낙태가 가능한 임신 기간에 대한 손질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낙태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기간과 제한적 내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기간이 구분될 전망이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산부인과 학계에 의하면 태아는 22주 내외부터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며 "착상시부터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 행사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결정가능기간)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제시했다.

이른바 '결정가능기간'까지는 수단 및 정도를 달리해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헌법재판관은 임신 14주(마지막 생리일 기준)까진 '조건없는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수 국가들이 '조건없는 낙태' 기준으로 규정한 '착상기준 임신 12주'와 시기상 같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2년 낙태죄를 위헌으로 본 의견을 인용, "임신 12주의 범위 내에서는 임부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도 임신 12주내 임부 결정에 따라 낙태를 가능하게 한 독일·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소개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수술이 허용되는 한계시점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불합치와 단순위헌을 낸 재판관들은 모두 낙태 '결정가능기간'으로 '임신 22주'를 제시했다. 이는 모자법 시행령에서 낙태수술 허용한계로 정한 '임신 24주 이내' 기준보다는 앞당겨진 것이다.

이와 맞물려 낙태 정당화사유, 즉 처벌 예외사유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현행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관들은 '사회 경제적 예외사유'로, Δ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는 경우 Δ소득이 불안정한 경우 Δ부부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등을 제시했다.

또한 Δ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Δ상대 남성이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Δ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Δ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한 경우 Δ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Δ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도 포함됐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꼽은 낙태 사유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2.9%), 자녀를 원치 않아서(31.2%), '파트너와 관계가 불안정해서(17.8%) 순으로 사회 경제적 이유가 다수였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는 앞으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복지부는 이미 2008년 모자보건법 14조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포함하는 개정안을 추진했으나 종교계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 단체 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낙태수술 허용 범위에 들어간다면 무분별한 낙태 수술이 더 늘어나고 생명 경시 풍조가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아버지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우는 예방법이 도입돼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20대 국회에 낙태죄 폐지와 관련된 법안이 정식 발의된 건은 아직 없다. 단 정의당이 곧 낙태죄 폐지를 골자로 한 형법 269조·270조 폐기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임신 12주 이내 임부의 경우 의사 상담을 거쳐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과 12주를 넘길 경우 기존 모자보건법 예외 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추가해 낙태를 허용하는 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 프랑스 등 임신12주 낙태 허용…獨 '상담 목적'도 형법에 적시

유럽 선진국에서도 낙태를 형벌로 다스리는 국가는 많다. 그러나 처벌이 면제되는 예외 사유를 좀 더 폭넓게 인정해 여성들의 안전과 권리도 함께 지키고 있다.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행한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에 따르면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는 모두 임신 12주 미만 내에 의사와 상담 후 시술한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중 낙태 전 상담을 의무화하는 독일은 형법 제219조에서 '상담은 태아의 생명보호를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엄격한 규정도 갖추고 있다.
또 임신갈등법에는 주거지역 별로 상담소가 복수 설치될 의무를 적시하는 등 국가가 상담소의 세세한 운영까지 따로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임신 24주 이내로 기한을 조금 더 확대하는 대신 의사 2명이 낙태 사유를 판단하는 경우 처벌을 면해주고 있다.
면제 사유로는 Δ임부 본인이나 그 가족의 육체·정신적 위험이 큰 경우 Δ임신으로 임부 생명이 위험한 경우 Δ태아가 출생됐을 때 육체·정신적 고통이 상당할 경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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