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헌재, '여성 자기결정권'에 손 들어줬다…"과잉금지원칙 위반"

뉴스1

입력 2019.04.11 17:16

수정 2019.04.11 17:16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과 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2019.4.1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과 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2019.4.1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입장발표를 마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2019.4.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헌법불합치 결정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입장발표를 마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2019.4.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태아 생명보호에 일방적"…임신 22주까지 결정가능기간
"경력단절·양육부담 등 사회·경제적 상황도 고려"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11일 결정했다. 지난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사회·경제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전향적 해석으로 66년 만에 개정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 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1항과 낙태시술을 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동법 270조1항 관련 헌법소원 심판사건과 관련해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 의견으로 두 조항 모두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현행 형법 269조(자기낙태죄)는 모자보건법에 적시된 예외상황 외에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끔 규정하고 있다. 동법 270조(의사낙태죄)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을 낙태하게 한 경우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을 내 헌재는 현행 자기·의사낙태죄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조용호·이종석 두 명의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다수의견 재판관들은 현행 낙태죄 규정이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균형성의 원칙을 어겼기에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현재 법 조항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의 실제적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태아의 발달단계 또는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임신기간 전체의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면서 국가의 형법적 제재 등으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에 따른 신체·정신적 부담과 출산과정에 내재된 신체·생명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모자관계를 형성하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봤다.

결정문에서 헌법불합치 의견 재판관들은 "여성에게 자녀의 양육은 20년 가까이 끊임없는 신체·정신·정서적 노력을 요구해 경제적 부담과 직장 등 사회생활의 어려움, 학업 곤란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성차별적인 관습·가부장적 문화·열악한 보육여건 등 사회적 문제가 가세할 경우 더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 봤다.

아울러 태아의 생명 보호 의무와 관련해서는 세계보건기구(WTO) 등에 따라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를 임신 22주 내외로 판단한 것에 근거해 발달 단계에 따라 보호정도나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의 연구에 따라 낙태·출산 여부를 고려할 때 실제 선택 요인에 낙태가 불법이라는 점은 거의 포함되지 않는데다, 연간 약 17만 건의 낙태가 이뤄지는데 반해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여성이 낙태죄로 기소된 경우는 연간 10건 이하에 불과해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국가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사회적 제도적 개선을 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은 충분히 하지 못하면서 형법적 제재 및 이에 따른 형벌의 위하력으로 임신한 여성에 대해 전면적·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치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도록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경제적 여건 개선제도를 마련하고, 낙태갈등 상황에서 전문가를 통해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사전·사후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보다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 조언하기도 했다.

또 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다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여성이 낙태 후 만나주지 않을 경우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가사·민사 분쟁에서 압박수단 등으로 낙태죄 고소가 악용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는 Δ우생학·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Δ전염성 질환 Δ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Δ혈족·인척 간의 임신 Δ모체 건강에 대한 위해나 우려가 있을 경우 낙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수의견 재판관들은 이같은 사유가 매우 제한적이기에 학업·직장 등 사회활동에의 우려 및 소득 불안정 등 임신 유지 및 출산을 힘들게 하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포섭되지 않아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더 나아가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22주 이후의 낙태를 원칙적으로는 제한하되,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합헌 의견을 밝힌 재판관들은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해 위헌, 합헌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며 "생명이 존재하는 곳에 존엄이 따르고 임간의 존엄을 인정하는 데에는 인격체 속에 내재하는 잠재적 능력으로 충분하다"고 반론을 폈다.

이들은 의학의 발전과 태아별 성장속도 차이 등을 감안하면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의 여부에 따라 생명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 허용은 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셈이 돼 현실적으로 낙태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우려하기도 했다.

비록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 해도 조항이 사라지면서 발생할지도 모를 인명경시풍조 등을 고려할 때 낙태죄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가볍다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경제적 현실은 남성의 책임 강화, 사회 안전망 구축, 모성 보호 정책, 임신한 부부에 대한 지원 등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 개선을 통해 바꿔나가야 한다고 봤다.

앞서 헌재는 2012년 조산사가 낙태 처벌조항이 위헌이라고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재판관 4(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판단했다.
태아도 생명권이 인정돼야 하고,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되며 불가피한 사정엔 낙태를 허용하기에 여성의 자기결정권 제한으로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였다.

헌재는 해당 법조항을 즉각 무효화하는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의 법적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고려해 시한을 정해 법률개정을 권고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행 조항은 2020년 12월31일을 시한으로 입법 개정 전까지 적용되며, 시한까지 입법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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