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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의약품 중단 사태' 재발 막으려면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1 17:17

수정 2019.03.21 18:53

[여의도에서] '의약품 중단 사태' 재발 막으려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보배양(2), 양민규군(3)의 부모는 최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선천성 심장병에 꼭 필요한 인공혈관을 공급하는 고어사가 지난 2017년 9월 철수한 후 수술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막판에 정부가 나서 미국까지 방문, 긴급하게 치료재료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아동들의 심장수술(폰탄수술)에 주로 쓰이는 폴리테트라 플루오로에틸렌(PTFE) 재질의 10㎜ 이상 인공혈관 공급이 끊겨 올해 초부터 국내 대형병원들이 예정된 수술을 기약 없이 미루고 있었다. 환아들이 혈관이 없어 제때 수술받지 못하면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후유증도 심각해 심한 경우 수개월 내 사망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서울아산병원, 세종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경북대병원 등은 공급재개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인공혈관 사재기를 해뒀다. 이 병원들이 2년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2년 이상 공급이 재개되지 못하자 수술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나서기 전에도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등 환자와 의사단체도 고어사에 공급재개 요청을 했다. 정부 실무자에게도 공문을 보내 심각한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둘 다 묵묵부답이었다.

고어사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것은 건강보험 수가가 낮고 환자가 적어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판매가는 미국 판매가(82만원)의 절반 수준인 46만원이었다. 이번에 물량을 공급하기로 약속하면서 미국 수준의 판매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에 폰탄수술 받아야 하는 환자 수는 30~40명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소화하는 물량이 적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자체 개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 정부 입장에서는 환자를 볼모로 약가나 재료비를 올려달라는 대로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한국 시장에서는 철수하겠다고 하면 비용을 올려준다는 인식이 퍼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글로벌 회사들이 환자를 앞세워서 약부터 투입하고, 이후 부당하게 요구를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며 사회적 편익과 손실을 고려해 냉엄하게 판단하고 가능한 한 환자가 피해를 보지 않게 긴급발동권을 준비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 법령 개정 등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아쉬웠다. 의료진도 당장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했고, 환우회도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수술재료가 없어지자 정부가 긴급하게 대응했다. 이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지난 2009년에는 노바티스 글리벡, 2011년 올림푸스 내시경, 지난해 리피오돌 사태까지 공급중단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비해야 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의료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환자들이 치료재료나 의약품이 있는데도 공급이 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과 같은 사건의 당사자가 바로 내 아이나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산업2부 차장·의학전문기자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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