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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대기업 개혁 집중하다 마이너스 6조… 국민 노후가 불안하다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10 16:39

수정 2019.03.10 16:39

강문순 증권·금융 선임기자
국민연금 수익률..30년만에 최악 
금융위기 이어 두번째 마이너스..예금 금리보다도 못한 성적표
CIO 공석에다 임원 줄줄이 이탈..수익률 급한데 실무자는 태부족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대기업 개혁 집중하다 마이너스 6조… 국민 노후가 불안하다

국민연금이 사상 최악의 기금운용 성적표를 받아들었다.1988년 설립 이후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쉽게 말해서 연금을 주식투자 등으로 굴렸는데 이것이 수익을 불리기는커녕 원금을 까먹었다는 얘기다. 마이너스 수익률이 문제가 되는 건 국민연금이 정년을 마치고 은퇴하는 국민의 노후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최후의 보루여서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정부 당국이 국민연금 투자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스튜어드십 코드)하고서도 이렇게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데 대해서는 사과는 물론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작년 국민연금 운용수익률 마이너스

10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0.92%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두번째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1년 만에 연금 5조8800억원을 까먹었다. 국민연금이 설립된 후 30년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다. 작년 말 국민연금 적립금액이 639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정기예금(금리 연 2%)에만 맡겨도 연간 10조원 이상 불릴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아이러니하다. 손실이 났으니 결과적으로 국민의 노후자금이 그만큼 줄었고, 이를 감당해야 할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연금공단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미국 증시 급락 등을 수익률 악화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각각 -7.7%와 -3.5%의 형편없는 수익률에 머무른 일본공적연금펀드(GPIF)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을 끌어다대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이는 군색한 해명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는 얘기다. 예로 거론한 외국 연기금 사례는 채권 같은 안전자산보다 주식 비중(모두 48%)이 더 크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은 주식(35%)보다 안전자산인 채권(52.9%) 비중이 월등히 높다.

다른 연기금에 비해 안전자산 비중이 확연히 높은데도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기본적 기금운용 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점 외엔 뚜렷한 이유가 안 보인다. 기금운용을 책임지는 기금운용본부장의 장기 공백과 전문인력 이탈 등 내부요인이 컸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1988년 이후 지난해까지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5.24%다. 최근 5년간 평균수익률도 3.97%다. 그렇던 수익률이 졸지에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문재인정부 들어 기금 운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주식 비중(32%)으로 운영되는 캐나다 연기금(CPPIB)은 작년에 8.4%의 운용수익을 거뒀다.

사실은 국민연금 수익률은 지난해만 나빴던 것은 아니다. 최근 5년치만 살펴봐도 운용을 잘한 나라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구조적 문제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정치권 입김, 핵심인력 이탈, 전문성 부족, 편중된 투자 포트폴리오 등 국민연금의 아킬레스건으로 언급되는 문제들을 방치해 수익률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 엉터리로 운용되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당겨진다는 점이다. 현재 추세로도 국민연금은 2057년이면 완전 고갈된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기금운용 수익률을 0.1%포인트만 올려도 연금고갈 시점을 1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 업계는 이를 1%포인트에 5년으로 추산한다.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대기업 개혁 집중하다 마이너스 6조… 국민 노후가 불안하다

■"독립 통한 전문성 제고 시급"

국민연금의 지상과제는 첫째도, 둘째도 수익률 제고다. 돈을 많이 불려야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올라가도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몇 년은 늦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려면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고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공공임대주택 등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를 내걸었다. 국민연금을 공적부조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새다.

작년 말부터 도입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역시 수익률 제고보다는 대기업 개혁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겨냥해 불법·탈법 대기업에 연금의 의결권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충실하게 따르는 결론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 기금운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진국들은 공적자금 운용과 관련해 정치의 개입과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난해 8%대 수익률을 낸 CPPIB에는 정부 인사가 한 명도 없다. CPPIB의 투자 원칙과 방향을 바꾸는 것은 헌법 개정보다 힘들다고 할 정도로 강한 독립성을 부여한다. 일본은 주식 운용과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100% 민간 운용사에 맡기고 있다. 이를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의 정치적 오·남용 소지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4개 경제부처 차관, 노조 측, 시민단체 등 정부 측 입김이 닿는 사람이 17명에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 3명 등 20명이다. 거의 대부분이 금융시장 흐름이나 대체투자 등에 문외한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선진 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나 사회적 책임 투자의 목적은 연기금 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는 데 기금운용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특정 기업 오너 일가의 일탈행위에 대해 정의사회를 구현하려는 기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국민의 미래 노후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기금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수익률 제고에 초점 맞춰야

1년치 나라살림보다 많은 639조원의 국민연금을 제대로 굴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이를 운용하는 사람에 달려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제기능을 잃은 상태다. 선장 격인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1년 넘게 비어 있었다. 글로벌 증시 급락 등 그 어느 때보다 위기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정부는 국민연금 CIO 자리를 방치한 셈이다. 강면욱 전 본부장이 사표를 낸 2017년 7월부터 안 본부장이 취임한 작년 10월까지 무려 15개월간 공석이었다. 주요 임원들도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7월 CIO 직무대리를 맡던 조인식 전 해외증권실장이 회사를 떠났고, 김재범 전 대체투자실장과 채준규 전 주식운용실장 등 고위 간부도 작년에 자리를 박찼다. 실제로 돈을 굴리는 실무자도 태부족이다. 국민연금 기금본부의 정원은 작년 기준 278명이지만 실제 근무인력은 240여명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은 부족한 투자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총 38명을 뽑았다. 그런데 올 2월 현재 운용직원 수는 1년 전과 같은 240여명이다. 작년에 채용한 전문가 수만큼 조직을 떠났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복지부는 자산분배·운용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쪽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국민연금 운용본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업무를 담당하는 팀을 수탁자책임실로 승격시키고, 인력도 9명에서 30여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중기 자산 배분, 즉 운용수익을 책임지는 투자전략팀 인원은 6명에 불과하다.

■투자전략도 전면 수정을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채권을 제외한 전 자산군에서 시장 벤치마크(BM) 지수보다 성과가 저조하다. 국민연금이 공시한 '자산군별 포트폴리오 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국내 채권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시장보다 성과가 떨어졌다. 지난해 -16.77% 수익률을 기록한 국내 주식의 경우 시장 대비 1.27%포인트 낮은 성과를 기록했다. -6.19% 수익률을 보인 해외 주식은 0.24%포인트, 4.21% 수익을 낸 해외 채권 역시 0.15%포인트씩 벤치마크 지수 대비 성과가 낮았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 운용인력 및 조직 확충과 함께 투자자산의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필요하다. 캐나다 CPPIB 수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 8.4% 수익률을 기록했다. 자산 내 주식 비중이 32%로 국민연금(35%)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대체투자의 자산 비중(40%)을 높게 가져가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국내 채권과 주식 비중이 65%를 넘고 대체투자 비중은 12%에 그친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체투자 부문은 11.8%로 선방했다. 국민연금도 10여년 전부터 대체투자를 늘리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국민연금은 2023년까지 전체 기금 포트폴리오에서 25%가량을 차지하는 해외투자 부문의 비중을 45%까지 늘리고, 대체투자 역시 12%에서 15% 정도로 확대할 예정이다.

안효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저조한 실적에 대해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체투자 자산이 목표비중을 밑돌았다"며 "올해는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해 대체투자자산 운용을 활성화해 (까먹은 수익률을) 만회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식·채권처럼 재래식 투자에 매달려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금융시장이 좋지 않아서 실적을 내지 못했다는 핑계만 댈 수는 없다. 주식·채권 등 정형화된 투자만 집중해봐야 큰 수익을 내기 힘들다.
대체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문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투자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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