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은행원 입사, 6·25 자원입대… 평생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4 18:05

수정 2019.03.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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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곤 명예회장 발자취
동양맥주서 공장청소 첫 업무.. 회장 취임 후 사업 확대 이끌어
과묵했지만 소탈한 성품으로 말 아끼며 경청의 리더십 보여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 공장에서 국내에서 첫 생산되는 코카콜라 제품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두산그룹 제공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68년 6월 한양식품 독산동 공장에서 국내에서 첫 생산되는 코카콜라 제품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두산그룹 제공

지난 3일 향년 8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유난히 말을 아끼며 경청의 리더십을 보여준 재계의 큰 어른이었다. 지난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해군에 자원입대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국가유공자이기도 하다.

■"남의 밥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 안다"

고인은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 공채 6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부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1960년 4월에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해 3년간 은행 생활을 한 고인은 1963년 4월 동양맥주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 이후 선진적인 경영을 잇따라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룹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에 취임해 세계적인 통신사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한국사회에 귀감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해군에 자원 입대, 통신병으로 비밀훈련을 받고 암호취급 부서에 배치된 후 해군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청진 앞바다까지 북진하는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용한 성품 때문에 이 같은 공적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2014년 5월 6·25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 받으며 뒤늦게 인정받았다.

■23년 간 써내려 간 '사부곡(思婦曲)'

유족들은 고인을 '아내에 대해 평생 각별한 사랑을 쏟은 남자'로 기억한다. 1960년 부부의 연을 맺은 이 여사는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인에게 인생의 '조언자'였다고 한다. 고인은 암 투병 중이던 부인의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오랜 기간 병구완을 하기도 했다. 지난 1996년 부인 고(故) 이응숙 여사를 먼저 떠나보낸 고인은 23년 간 '사부곡(思婦曲)'을 써왔다.

과묵했지만 소탈하고 다정한 성품을 드러내는 일화들도 적지 않다. 두산그룹 면접 시험장에서 고인은 지원자에게 부친의 직업을 물었고, '목수'라는 답변을 듣고는 '고생하신 분이니 잘해드리세요'라며 등을 두드려줬다고 한다. 당시 지원자는 중견 간부로 성장했다. 박 명예회장은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한 적도 있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했던 것이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맡아 박 명예회장과도 40여년을 함께 했다.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 2군 창단에도 가장 먼저 나섰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 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선물 받았다.


고인은 국제상업회의소 한국위원회 의장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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