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첫 법정 선 양승태 "검찰 무에서 유 창조..재판 프로세스 이해 못하더라"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6 15:56

수정 2019.02.26 16:02

보석 심문서 검찰 향해 작심 비판 쏟아내
검찰 "증거인멸·도주우려 있어 보석 안 돼"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법정에 처음으로 출석해 ‘검찰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며 수사에 강한 불신을 내비쳤다. 검찰 측은 양 전 대법원장이 구치소에서 풀려나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26일 열린 자신의 보석 심문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된 처지에 대한 참담한 심정과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며칠 전에 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사람이 내가 수감된 방 앞을 지나가면서 얘기했다.
‘대한민국 검찰이 대단하다. 우리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어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하게 하고 전 대법원장을 구속까지 시켰으니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얘기했다”고 얼마 전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저는 그 사람들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 한다”며 “우리 검찰은 형사문제가 될 게 없다는 법원 자체조사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목표의식에 불타는 수십명의 검사를 동원해서 법원을 쥐잡듯 샅샅이 뒤져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에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겪은 검찰 수사 과정의 문제점들을 일일이 끄집어내 비판했다. 그는 “검찰이 우리 법원의 재판에 관해 프로세스를 이렇게 이해 못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며 “재판 하나하나 그 결론을 내기 위해 법관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얼마나 깊은 고뇌를 거치고 번뇌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저 옆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말이나 문건을 보고 쉽게 결론내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더구나 대법원의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너무나 이해력이 없어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양 전 원장은 “이 상황에서 저는 무소불위의 검찰과 마주서야 한다. 제가 갖고 있는 무기는 하나도 없다. 영민한 사명감에 불타는 검찰이 법원을 샅샅이 뒤진 20만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서류가 내 앞에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며 “책 몇권을 두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수감중인 방)에서 그걸 검토하는 것은 100분의 1도 제대로 못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검찰 측에서는 ‘변호인들이 기록을 검토하면 될 일 아니냐’고 했는데 이는 검찰의 심증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라며 “가장 아픔을 겪고 고통을 받는 사람은 피고인 본인이고, 본인이 아니면 전후관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검찰 조사과정에서 조사의 진술이 조서에 반영되는 것을 보고 “말하는 취지와 달리 이해될 수 있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조사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고, 많은 사실이 그것 때문에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를 향해서는 “공평과 형평이라는 형사소송법 이념이 지배하는 법정이 되고, 그안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고, 그럼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검찰 측은 양 전 원장이 구속기소된 지 불과 8일 만에 보석을 청구했다며 그 사이 보석이 받아들여질 만한 사정변경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잘못을 하급자에게 전가하는 등 여전히 증거를 인멸할 사유가 있다”며 “공범이나 수사 중인 전·현직 법관들에게 부당한 영향을 줘 이들의 진술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진술을 예로 들며 “임 전 차장은 ‘윗분들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진술할 수 있겠느냐. 윗분들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가 안고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양 전 원장 변호인은 “확인되지 않은 진술을 법정에서 주장해도 되는지 의문”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또 한정된 구속기한 내에 방대한 검찰기록을 검토하는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방어권 행사를 위해 그 어떤 불구속 필요성이 크다. 그런 점을 감안해 피고인의 보석허가 결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양 측의 입장을 검토한 후 적절한 시기에 보석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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