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더 걷힌 세금, 복지에 써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1 17:10

수정 2019.02.11 17:10

지난해 예상보다 25조 초과
펑펑 쓰는 남미식이 아니라 깐깐한 북유럽식으로 가야
[곽인찬 칼럼] 더 걷힌 세금, 복지에 써라

지난해 세금이 역대급으로 많이 걷혔다. 정부 예상보다 25조원가량 많다. 누가 봐도 세수 추계가 엉터리다. 서민은 골병인데 나라만 부자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런 말 들어도 싸다. 그건 그렇고,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한테 물어보면 복지에 쓰라고 할 것 같다.
장 교수는 한국 특유의 '자린고비 경제학'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선 정부가 재정을 조금만 늘려도 당장 난리가 난다. 나라살림 거덜내려고 작정했느냐,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남미 못 보았느냐고 질타한다. 장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에게 복지는 국가와 국민에 투자하는 것이다. 노동자 재교육하고 의료, 탁아, 육아 시설 등에 과감히 투자하자는 것이다. 장 교수는 "오죽하면 보수적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 정부에 돈을 더 쓰라고 얘기하겠는가"고 묻는다.

OECD는 지난해 여름 한국경제 보고서를 냈다. 거기서 정부에 재정 지출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경제력에 비해 삶의 질이 낮으니 정부가 복지에 돈을 더 쓰라는 것이다. 장 교수 말대로 OECD는 보수적인 기관이다. 그런데도 이런 주문을 낸 것은 한국의 나랏빚이 더없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를 밑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엔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재정확대론에 힘을 보탰다. 이 부의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우리 공무원들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재정 확장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재정을 긴축해온 측면이 있다"며 "올해는 확장적 재정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정부 예산에 슈퍼재정 딱지를 붙인 이들과는 시각이 딴판이다.

나도 재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쓰자는 쪽이다. 다름 아닌 노동개혁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노조원들은 일자리에 목을 맨다. 왜? 일자리를 잃으면 모든 걸 잃기 때문이다. 만약 일자리를 잃어도 상당 기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지금처럼 1년 넘게 굴뚝에 올라 목숨을 거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서 목숨을 걸고 복직을 외치면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은 누구의 몫일까"라고 묻는다. 답은 이렇다. "1차적 책임은 해당 기업이 아닌 국가에 있다." 그는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려면 먼저 국가가 실업급여 같은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경제철학의 전환').

심지어 미국 브라운대학의 마크 브라이스 교수는 "복지국가를 축소하자는 것은 사회를 파괴하는 선동"이라고 주장한다('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 긴축론자의 눈엔 브라이스 교수가 선동가처럼 보일지 모른다. 나도 긴축을 대놓고 '헛소리'로 규정하는 브라이스 교수의 주장이 다 옳다고 보진 않는다. 세상엔 돈을 흥청망청 쓰다 망한 나라가 꽤 많다. 대통령 두 명이 으르렁대는 베네수엘라를 보라.

그렇지만 복지를 늘린다고 죄다 베네수엘라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도 있다.
국가가 돈을 꼼꼼하게 잘 쓰면 우리도 북유럽처럼 될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에 제안한다.
적어도 작년에 더 걷힌 세금만큼은 실업자를 돕는 데 과감히 '투자'하기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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