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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내 몸 속에 쥐가 산다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1 17:10

수정 2019.02.11 17:10

[fn논단] 내 몸 속에 쥐가 산다

나는 최근 단골집을 바꿨다. 새로 옮긴 집은 공짜로 주는 상품이 아주 많다.

공간도 무한정 넓어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다. 또 곳곳에는 인류가 수만년 이룩한 지식과 정보와 역사까지 넘친다. 이 콘텐츠를 얻으러 세상 사람들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몰려든다. 바로 인터넷 사이버 공간이다.


이곳의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는 물과 공기처럼 공짜에 가까운 공공재가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이 세계야말로 토머스 모어가 '현실에는 없는 곳'이라 칭했던 '유토피아'의 한 형태라는 생각까지 든다. 요즘 이 단골집에서 최고 유행하는 메뉴는 '1인 방송'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주장을 갈파하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를 향해 주인공의 목소리는 점층적으로 커지고 주의, 주장도 동서남북 극과 극으로 오간다. 둘러선 군중들은 얼쑤! 추임새를 넣거나 옳소! 맞장구치는 댓글을 신나게 달아댄다. 졸졸졸, 그들이 쏘아올린 댓글 모양새가 마치 먹이를 찾으러 달려가는 ^0^ ^0^ ^0^ 일개미떼 같다.

하지만 내용을 읽는 순간 일개미떼가 아니라 쥐떼라는 걸 알게 된다. 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산다는 '레밍'이라는 쥐떼 말이다. 일명 '나그네쥐'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은 방향을 잘 틀 줄 몰라 오로지 앞으로만 가는 동물이다. 번식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몇 년마다 개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무리가 급속하게 커지면 먹을 게 부족해 이동하는데,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놈들이라 호수나 바다를 만나도 무조건 달려나가 결국은 모두 물에 빠져죽는다.

남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스프링벅도 비슷하다. 산양과에 속하는 이 녀석들도 보통 때는 수십마리씩 살다가 간혹 수만에서 수십만마리 큰 무리를 형성한다. 거대 집단이 된 녀석들은 풀을 뜯어먹으려고 전진하다가 행렬 뒤쪽 녀석들이 자기 몫의 풀이 사라지면 앞의 동료를 밀치기 시작한다. 이런 떠밀기는 선두에서 천천히 걷던 녀석들도 달리게 만들어 결국은 모두가 필사적으로 죽음의 질주를 시작한다.

처음엔 풀을 뜯어먹으려는 밀침이지만 한순간 풀은 안중에서 사라진다. 그 목표 상실한 광란의 질주는 푸른 초원을 달려나가 사막을 지나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벼랑을 마주쳐도 멈추지 못한다. 결국 선두에 선 스프링벅 떼는 뒤쪽에서 밀어붙이는 엄청난 힘에 떠밀려 푸른 바다 속으로 차례차례 빠져 비극의 마라톤을 끝낸다.

우리는 자기 주장이 강한 자를 도그마가 강한 인간이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좇아가는 자들이야말로 더 깊은 도그마에 빠진 인간이다.
유튜브 개인방송에서 옳고그름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남이 흔드는 깃발을 향해 달려가는 도그마에 빠진 자들의 질주를 지켜보면, 사이버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다가도 현대사회의 부정적 측면이 극단화된 미래상 '디스토피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 댓글러들을 보며 반추한다.
지난 몇 년 격랑의 시간, 나 또한 남의 말을 맹목적으로 좇은 스프링벅이나 레밍은 아니었을까? 오늘 밤 이불 덮어쓰고 내 몸 속에 든 쥐떼부터 쫓아내야겠다.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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