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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그 후 1년] 거리감 여전, 오히려 더 차가워진 겨울 스포츠

뉴스1

입력 2019.02.09 06:31

수정 2019.02.09 06:31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겨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 했으나 잇따른 악재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 News1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겨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 했으나 잇따른 악재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 News1

전명규 빙상연맹 전 부회장(한국체대 교수)이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빙상계 성폭력 은폐 의혹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앞서 ‘젊은 빙상인 연대’와 무소속 손혜원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 적폐를 뿌리 뽑기 위해선
전명규 빙상연맹 전 부회장(한국체대 교수)이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빙상계 성폭력 은폐 의혹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앞서 ‘젊은 빙상인 연대’와 무소속 손혜원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 적폐를 뿌리 뽑기 위해선

[편집자주]정확히 1년전 인 2018년 2월 9일, '세계인의 겨울 스포츠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92개국 2900 여명의 선수가 출전, 17일간 기량을 겨룬 평창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 외신들이 호평했던 성공적인 대회였다.
평창 올림픽은 당시를 계기로 활성화한 남북 스포츠 교류가 2020년 도쿄 올림픽 단일팀 추진으로 이어지는 등 큰 역할을 했으나 대회 후 선수 폭행 등 ‘성과주의’에 집착했던 한국 스포츠의 폐해 또한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평창 올림픽이 지난 1년 간 남긴 명암과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흔히 동하계 올림픽과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그리고 세계육상선수권을 일컬어 '4대 스포츠 이벤트'라 부른다. 이런 메가 이벤트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 6개 국가뿐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등 내로라하는 국가들 사이 대한민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한국은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대부분 성공적이라는 도장이 찍혔다. 1988 서울올림픽은 서울과 대한민국의 여러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2년 한반도의 붉은 물결은 전 세계가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두 번의 아시안게임(2002 부산, 2014 인천)과 FIFA U-17 월드컵(2007)과 U-20 월드컵(2017)까지, 큰 대회를 잘 치르는 힘을 갖춘 나라다. 그래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 했을 때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직은 거리감이 있는 '동계 스포츠'로 치르는 올림픽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과연 국민적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김연아로 친숙해진 피겨나 이상화의 스피드 스케이팅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비인기종목들이 다수다. 심지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르는 종목들도 적잖다. 바로 이런 '현재'를 보다 가까운 '미래'에는 바꿔야하지 않겠는가라는 방향도 동계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줬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100일 가량 남겼던 2017년 10월말 뉴스1과 인터뷰를 진행한 노태강 문체부 2차관은 "동계 종목들을 살펴보면, 국민이나 사회의 수준이 어느 정도 도달해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들이 많다. 동계 올림픽 참가국들도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좀 앞선 나라들이 많다"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동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온다는 가정 하에 이번 평창올림픽을 '기회'로 삼았으면 싶다"고 지향점을 설명한 바 있다.

동계 올림픽 개최로 인한 다양한 기대효과 중 하나는 분명 멀게만 느껴지던 겨울 스포츠의 인식을 바꾼다는 측면이 있었다. 하계 종목들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 '스포츠 강국' 이미지를 쌓은 것과 달리 동계 스포츠 쪽에서는 아직 뚜렷한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의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 속의 겨울체육'에도 기여한다는 지향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체육계가 힘을 합쳐 각종 시설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하고 이전까지 낯설었던 동계 종목에 대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 집중 노력을 쏟았다. 덕분에 우려했던 것보다 많은 국민들이 현장에서 또 TV나 기타 매체를 통해 동계올림픽을 즐기면서 주최 측의 바람대로 거리감을 줄이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급조된 겨울왕국'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추워진 모양새다. 각종 대회 시설들의 사후 관리가 미미한 것 이상으로 겨울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도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각종 악재들 때문에 외려 후퇴했다는 냉정한 시선들도 있다.

문체부 한 관계자는 "이제 1년이 지난 시점이기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한 겨울 스포츠의 인식 제고를 운운하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당장으로서는 동계 스포츠나 겨울철 레저를 즐기는 인구가 늘었다거나 인식이 좋아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했다. 체육계의 한 인사는 보다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올림픽 이후 체육계의 각종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전반적인 인식이 더 나빠졌다. 특히 성폭력 문제나 경기단체의 비위 행위 등이 하필 동계 스포츠 쪽에서 터져 나와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씁쓸한 견해를 밝혔다.

소위 '왕따 논란'을 일으켰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대표팀의 불협화음과 '영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온 국민을 환하게 웃음 짓게 했던 여자컬링 '팀킴'의 내부비리 폭로에 이어 체육계 미투 운동의 발단이 된 '조재범 사태'와 파벌을 운운하던 빙상계의 진흙탕 싸움 등 각종 추악한 이야기들이 체육계를 넘어 사회전반에 큰 충격을 던지며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가뜩이나 비인기 종목이 집중된 동계 스포츠인데 최근 들춰진 폭로들이 유망주들의 진입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또 다른 체육계 인사는 "아무래도 비인기 종목들, 언론의 조명이나 일반인들의 관심이 적은 종목들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평창 올림픽을 급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보는 것은 비약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치부해버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나도 체육계 종사자지만, 내가 부모라도 운동 시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가뜩이나 저변이 넓지 않은 동계종목들인데 앞으로 더 어두워질 것"이라고 답답함을 피력했다.

종합적으로 애초의 깃발과는 동떨어진 방향이 되고 있다는 중론이다.
한 관계자는 "과거 스키나 피겨 등 동계스포츠 소비층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재정적인 능력도 뒷받침 되어야 했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제 그런 특별함도 사라졌다"고 말한 뒤 "생활 속의 동계스포츠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은 겨울 스포츠와 더 거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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