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샌드박스가 성공하길 바란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2 17:17

수정 2019.01.22 17:17

[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샌드박스가 성공하길 바란다

"줄 그어놓은 밖으로 나가서 흙장난하면 안돼. 그 대신 이 안에서는 늦게까지 마음대로 흙놀이 해도 좋아." 장난감이 변변치 않던 어린 시절 흙장난은 꽤 쏠쏠한 놀이였다. 길가 아무데서나 흙을 만지고 놀다 지나는 차에 다칠 뻔하기도 하고 종종 흙에 섞인 개똥도 주워 먹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마냥 흙장난을 못하게 하자니 딱히 장난감을 사줄 형편도 안됐던 엄마는 마당에 네모나게 선을 긋고는 흙을 퍼다줬다. 그 안에서만 흙놀이를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 대신 선 밖을 벗어나 흙장난을 하면 꿀밤을 주겠다고 으름장도 놨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자유가 좋았던지 그 이후로 나는 길가에서 흙장난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유행어가 된 샌드박스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부 부처 중에는 처음으로 규제샌드박스 시행에 나섰다. 신청한 기업들을 심사해 임시면허를 주고 규제를 피해 신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나 상품을 개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산업은 낯설고 가끔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정말 편리한 서비스 맞아? 이용자에게 피해는 없을까? 기존 산업과 충돌하는 면은 없는가? 이런 걱정이 앞서니 신산업에 대해 정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차량공유 산업이 세계적으로 유행이라지만 한국에서는 택시산업과 치열한 갈등을 빚고 있다. 블록체인·암호화폐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핵심기술이라지만 투자사기도 많고 기존 금융산업의 신뢰를 무너뜨릴까 걱정도 된다. 그렇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개발되는 신기술을 우리나라 기업들에만 이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규제샌드박스다.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성공하길 바란다. 신기술을 이용해 사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업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신기술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특히 규제의 담당부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모호한 규제들 때문에 사업 시작 후 1년 넘게 정부 민원실만 전전하고 다닌다는 초보 창업가들에게 규제샌드박스는 샘물 같은 소식이다.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신청기업에 대한 심사가 까다로우면 안된다. 샌드박스는 영역을 한정하지만 영역 안에서는 자유를 보장하는 룰이 있다. 정부가 신청기업을 심의한답시고 이리 재고 저리 따져 결국 샌드박스 제도 밖으로 내몰아버리면 안된다. 그것은 샌드박스가 아니라 또 하나의 규제다. 길게도 아니고 3년간 한시적으로 쓸 수 있는 면허를 주는 것이니 최대한 심사가 여유로웠으면 한다.

또 샌드박스 안에서 규제의 영역을 따지지 않았으면 한다. 과기정통부에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했는데, 이것은 금융분야이니 금융위원회로 가라고 내쫓아서는 안된다. 규제의 영역을 따지는 것은 샌드박스를 운용하는 정부부처들의 몫이다. 샌드박스를 신청하기 위해 규제당국의 역할부터 뒤져보도록 기업들에 짐을 떠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과기정통부가 그 시범사례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혁신성장을 주도할 대표주자로서 규제샌드박스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엄마가 "샌드박스 안에서 물은 가지고 놀면 안되고, 신을 벗으면 안되고… "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면 나는 계속 길가에서 위험한 흙놀이를 했을 것이다.

cafe9@fnnews.com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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