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은행원 없어도 된다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1 17:20 수정 : 2019.01.21 17:20

AI은행원 ‘코라’ 영국서 등장
파업은 인력구조조정 촉진제
유휴인력 활용 방안 찾아야



국민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하던 날(8일) 나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은행에 볼 일이 없기도 했지만 설혹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이 은행과 장기간 거래해온 고객이다. 그러나 내가 오프라인 점포를 방문하는 경우는 1년에 두세 번 정도다.
투자상담을 할 때 빼고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인터넷이나 모바일 뱅킹으로 처리한다.

다른 사람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체 직원 1만6800명 중 9000명(노조 추산)이 파업에 참여했음에도 영업 현장에선 큰 혼란이 없었다. SNS에는 "스마트폰을 주로 이용하고 있어서 파업하는 줄도 몰랐다"는 말도 올라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대면거래 비중은 9%(현금입출금 업무 기준)에 불과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빼면 창구를 이용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 업무는 필요하지만, 은행은 필요하지 않다(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가 1994년에 한 말이다. 당시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그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 은행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지난해 2월 AI 은행원 '코라'를 시험 배치했다. 전체 지점의 4분의 1을 폐쇄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코라는 젊은 여성 얼굴을 가진 AI 프로그램이다.

몇 년 전 알파고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 이세돌을 이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알파고는 바둑에 특화된 AI 프로그램이다. 알파고는 뛰어난 학습능력으로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로 성장했다. 코라는 알파고의 은행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단순반복적 업무만 할 수 있다. 그러나 뛰어난 학습능력을 활용하면 고도의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그런 능력을 갖춘 AI 은행원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AI 은행원 '에리카'는 자산관리가 전문이다. 이 은행은 에리카의 등장으로 과거 1%의 VIP 고객에게만 제공하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일반 고객에게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은행 파업을 보는 여론의 반응이 싸늘했다. 고액 연봉자들의 임금 올리기 파업에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은행 임직원의 평균연봉은 9100만원이나 된다. 그러니 지나친 탐욕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 그러나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은 이런 도덕적 측면이 아니다. 9000명이나 파업을 했는데도 은행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행 파업은 은행에 대규모 고임금 유휴인력이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내 판단으로는 국민은행 노조원들은 지금 임금을 얼마 올리느냐보다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은행 경영진은 파업이 확인시켜준 대규모 고임금 유휴인력의 존재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경영진 입장에 서 보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AI 은행원의 전문지식은 사람을 앞선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같은 까다로운 규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민은행 노조원들처럼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하지도 않는다. 국내은행들도 AI 은행원 도입을 서두를 것이 분명하다.

국민은행 노조는 오는 30일부터 2차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파업으로 임금을 조금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의 파업이 '은행원 없는 은행' 'AI 은행원 시대'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은행원이 없어도 된다고 광고할 의도가 아니라면 추가파업을 철회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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