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규제혁신과 관련한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가 발표한 '국제 혁신 스코어'에서 한국이 평가대상국 61국 가운데 24위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은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최고점인 A+를 받았지만 차량공유 부문에서는 낙제점인 F등급을 받았다. 간신히 낙제를 면한 숙박공유(D등급)의 경우 우리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국가는 아프리카의 르완다뿐이었다. 그나마 창업과 인재 분야에서 각각 B+와 B-를 받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형편이다.
이러다보니 '선(先)허용, 후(後)규제'를 골자로 하는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업계의 관심과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시행 첫날부터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등 총 21곳이 규제특례 신청서를 접수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차 운전자들을 위해 서울 시내 5개 지역에 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KT와 카카오페이는 공공기관이 우편으로 보내는 과태료 통지서와 고지서 등을 모바일로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규제 샌드박스 시행에 따라 정부는 이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30일 이내에 심의·의결해야 한다.
문제는 규제 샌드박스 입법 취지에 맞게 기업의 요구가 신속하게 시장에 전달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책 담당자들의 인식 대전환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19세기 말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언급하며 "우리가 제때에 규제혁신을 이뤄야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책 담당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붉은 깃발을 먼저 걷어내야 규제 샌드박스 시행에 따른 과실을 제때에 제대로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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