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조선반도 비핵화'는 꼼수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6 17:39

수정 2019.01.16 17:39

'염원적 사고'론 진실 못봐
北 핵보유 의지 간과 말고 북핵 폐기에 초점 맞춰야
[구본영 칼럼] '조선반도 비핵화'는 꼼수다

지난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했다. 그는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관행처럼 시진핑 국가주석과 '작전타임'을 가졌던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작전지시'는 불길했다.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 추진을 위해 북한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높이 평가한 대목이 그랬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선반도(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완전한 비핵화 입장은 불변"이라고 했다. 이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일부 당국자는 "최초의 김 위원장 육성을 통한 비핵화 언급"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당시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미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은 '북핵 폐기'를 피하려는 꼼수로 해석했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만의 비핵화를 뜻하지 않는 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그간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의심하지 않으려 했던 현 정부 외교안보팀과 한목소리를 내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조차 입장이 바뀌는 듯한 인상이다. 그는 9일 국회 남북경협특위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북한 비핵화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염원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빠져들면 진실을 놓치기 십상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기대가 그래 보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정권은 줄곧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남북은 이미 핵무기를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서명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통해서다.

남한은 그 약속을 지켰다.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 것은 물론 주한미군의 전술핵도 철수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북한만 실천하면 완성되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다시 언급했다. 그것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나오는 '보유·저장·배비' 조항은 쏙 뺀 채. 이는 기 보유한 핵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뜻이 아닌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우는 의도는 뻔하다. 북핵 협상에서 유사시 미국의 핵우산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포기하라고 맞불을 놓으며 시간을 끌려는 심산일 게다.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이유다. 쓸데없는 가정을 배제한 '오컴의 면도날'로 해부하면 북의 속내는 여실히 드러난다.

머잖아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분위기다. 혹여 일각의 관측처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직접적 위협인 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제거하는 데 만족한다면 악몽의 시나리오다. 지난 66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의 간헐적 도발로 크고 작은 희생을 치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도 유린됐다. 만일 북이 핵이란 비대칭무기를 거머쥔 채 분단이 고착화한다면? 평화공존은 한낱 신기루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보다 한국이 더 북핵 폐기에 집중해야 한다. 김정은의 신년사와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개념 차이가 확인돼 다행스럽다.
북핵 폐기라는 결실이 없는 평화 이벤트는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눈속임이란 걸 명심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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