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불황의 그늘---보험.적금 해지 사상 최대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4 16:21

수정 2019.01.14 16:21

금융자산시장에서 보험·적금 가입 및 해지와 정기적금 변동 여부는 경기를 예측하고 진단하는 주요 지표다. 경기가 안좋거나 불확실성이 높으면 보험이나 적금을 깨는 게 일반적이다. 여유자금이 있는 경우에는 펀드나 주식보다는 안전자산인 정기예금으로 몰린다. 가계 금융실태를 놓고 볼때 일반적으로 경기가 어렵거나 전망이 불투명하면 먼저 보험을 깨고 이후에 펀드 납입 중단, 적금 해약 순으로 금융자산을 정리한다. 요즘들어 금융자산 흐름을 보면 꼭 그렇다.

■은행권 정기예금 8년 만에 최대폭 증가
14일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 정기예금이 8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10억원이 넘는 뭉칫돈이 쌓인 정기예금 계좌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668조4000억원으로 1년 새 72조2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0년 95조7000억원 이래 가장 큰 금액이다. 2016년엔 19조4000억원, 2017년엔 28조8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길 잃은 뭉칫돈이 정기예금으로 몰리는 이유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식·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서다.

당분간 이런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한은이 통화정책방향을 지난해 11월 윗쪽으로 튼데다 은행들이 건전성 규제 강화에 대비해 예금유치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 최저 수준을 높이고 있다. LCR 최저한도가 90%에서 지난해 95%로 높아졌고 올해는 100%가 됐다. LCR가 높으면 위기 상황이 벌어져도 바로 현금화할 자산이 많아 은행의 생존력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내년부터는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금 비율) 산정 기준도 바뀐다. 은행들이 대출 포트폴리오를 갑자기 조정하지 않고 예대율을 100% 이하로 맞추려면 예금을 더 확보해야 한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4분기 말 국내 은행 LCR는 104.7%다. 전년 말(100.9%)보다 3.8%포인트 높다. 그러나 글로벌 은행과 비교하면 국내 은행들의 LCR는 낮은 수준이다.

은행들이 예금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10억원을 초과하는 거액 정기예금 계좌도 크게 늘었다.지난해 6월 말 10억원이 넘는 정기예금 계좌는 4만1000개로 1년 전보다 7.9% 증가했다. 이는 2012년 1·4분기(4만3000개) 이래 6년 만에 가장 많다.

팍팍해진 살림에 보험·적금 해지 사상 최대
그나마 여유자금을 은행에 잠시 넣어두는 경우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최근 수년째 보험·적금을 깨는 규모가 사상최대다. 그만큼 먹고살기가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10월 기준 보험사의 보험 해지 건수(효력상실 포함)는 530만3965건으로 전년 동기 489만9643건보다 8.25% 증가했다. 보험을 해지한 고객에게 돌려주는 해지환급금(효력 상실포함)도 22조9692억39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3% 늘었다. 아직 총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추세라면 해약환급금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치인 23조6700여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행 적금을 중간에 깨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국감자료에 따르면 은행 정기적금 해지금액은 14조원으로 5년만에 최고였다.

서울 강남의 한 은행 PB센터장은 "투자상품의 변동성이 커진 탓에 장기 투자보다는 1년 미만의 단기 상품으로 가자는 일종의 대기자금이 늘고 있다"며 "최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분위기는 다소 호전됐지만 변동성은 여전히 커서 PB 고객들도 최근 상환 때마다 안전자산을 늘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장기 투자처를 잃고 떠도는 돈이 많다는 건 역설적으로 경제에 부담을 지운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금융·증권 선임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