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블록체인 산업화, 대기업이 나서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8 16:29

수정 2019.01.08 16:29

[이구순의 느린 걸음] 블록체인 산업화, 대기업이 나서야

"암호화폐, 암호화폐공개(ICO)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신규사업은 당분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국내 한 대기업 법무팀이 사내에 공지한 지침이란다. 이 지침은 지난해 하반기 공지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 중이고, 신사업 계획서를 올릴 때마다 키워드에 걸리면 아예 계획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이 대기업은 지난해 초 블록체인 신사업 추진팀이 신설됐는데 내부 지침을 맞추다보니 제대로 된 신사업을 발굴하지 못한 채 1년째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처지다.

8일(현지시간)부터 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9에는 참여하는 블록체인 관련 전시 참가업체가 27개에 달한다. 핀테크와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CES 전시장에 전시부스를 꾸린다.
CES를 주최하는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는 5세대(5G) 이동통신과 IoT, 헬스, 광고, 자동차 등과 함께 블록체인을 올해의 주요 토픽으로 선정했다. 전 세계 가전·IT 시장의 소비 트렌드를 한눈에 보여주는 CES가 블록체인을 주요 토픽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결국 블록체인이 서비스와 상품으로 일상화될 수 있는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말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가트너는 2025년 블록체인 시장이 1760억달러(약 195조원)으로 성장하고, 2030년 3조1000억달러(약 3433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2년까지 블록체인 분야에서 창출될 새 일자리도 17만5000개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가 기존에 금융권·창업초기기업(스타트업) 중심으로 현성됐던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가 유통, 요식업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고 대기업들의 본격적인 참여가 이뤄지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가 이제 막 초기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블록체인 산업의 주도권을 잡고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빛의 속도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 대기업들은 여전히 몸을 사린 채 눈치만 보고 있다. 물론 정부가 ICO를 전면금지하고 있으니 대기업 법무팀이야 정부 지침을 거스를 수 없는 게 이해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 눈치를 보느라 시장 주도권을 놓치고 경쟁력이 떨어지면 정부에 그 책임까지 떠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비단 ICO가 아니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낼 투자와 아이디어 발굴에는 발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 반도체 경기 하락이 예고되면서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새 먹거리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판국에 전 세계가 새로운 먹거리로 지목하고 있는 블록체인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대기업들이 더 이상 정부 정책만 기다리고 앉아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스타트업들이 어렵사리 시장을 일궈놓으면 뒤따라 들어가 시장을 차지하던 낡은 습관을 재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대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대중화와 상품화에 나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나서야 할 때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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