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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노믹스 J턴하라] 경제 원로 진념 前 부총리에게 듣는다

예병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2 16:56

수정 2019.01.02 16:56

"우리 경제 어렵지만 잠재력 충분, 기업은 투명경영, 노조는 상생하라"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노동운동..패러다임 변화 없으면 미래 없어..정부, 기업 자율성과 끼 살려줘야
최저임금처럼 정책 부작용 생길때 임시방편은 시장 왜곡만 불러와
홍남기號 본질적 대책 고민하길
진념 前 부총리
진념 前 부총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극장가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는 실화를 다룬 허구지만 배경이 된 지난 1997년 당시, 국난(國亂)의 상황에서 우리 경제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경제계 인물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명이 진념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다. 김대중정부에선 기획예산처 장관, 경제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의 영광과 질곡을 함께했다. 지난 연말(12월 17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진념 전 부총리는 저성장기에 진입한 우리 경제가 엄중한 상황임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 경제는 성장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선결과제가 있다고 했다. 정부에는 기업이 혁신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등 기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에는 협력사와의 상생과 가치경영, 투명한 부의 상속 등 이른바 '공정·투명·책임경영을 위한 10대 강령'을 작성, 지키겠다는 것을 천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노조에는 강성 이미지를 벗고 기업과 함께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할 수 있는 변화를 주문했다.

대담 = 김규성 경제부장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크다. 현재 우리 경제가 어떤 상황이라고 평가하나.

▲매우 엄중하다.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기업이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졌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설비투자는 6개월 연속 감소했다. 투자가 부진하니 생산능력 확충도 안 되고 일자리도 부진하다. 소비심리도 악화 중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수출 하나로 버티고 있다. 수출도 반도체를 제외하면 상황이 나쁘다. 올해 정부가 2.6~2.7%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민간에서는 2.5% 수준도 버겁다는 말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도 정부는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고용부진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다. 현재의 고용상황을 진단한다면.

▲인구구조가 바뀐 것을 고려해도 지난해 상황은 '고용쇼크'가 맞다. 고용의 질도 문제다.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가는데 세금을 지원한 일자리나 공공부문 단기일자리 등 이른바 '땜질식 일자리'만 늘었다. 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는 게 상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열려야 한다. 시장은 규제를 풀거나 기술·경영·노동에서 혁신이 함께 이뤄져야 일자리가 나온다. 아울러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식과 타이밍이 늦는 바람에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다.

―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다면 우선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 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해나가야 하나.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노사가 힘을 모아서 일본 도요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특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도요타가 품질을 개량하고 신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과정에서 경영계는 무엇을 했고, 노동계는 어떻게 협력했는지를 배우자는 것이다. 또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협력사의 임금 수준을 모기업의 70%까지 올리기 위해서 노조는 임금을 3년 동안 동결하는 식으로 돕고, 기업도 협력사 지원에 나서고, 여기에 정부가 세제로 지원하는 등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시도가 '광주형 일자리'라고 보는데 사실 전망이 어둡다.

―문재인정부에서 다양한 노동정책이 나왔다. 하지만 대립,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노동존중의 의미가 강성 노조사회를 만들겠다는 뜻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노동존중 사회가 되려면 희생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 노동운동은 지난 1987년 민주화 선언 시대에 머물러 있다. 특히 대기업 노조는 비정규직이나 협력사 등 다른 노동자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같이 희생하고 동참하는 상생의 모습이 아쉽다.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고용안정과 노동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시스템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독일 슈뢰더 전 총리는 당보다는 나라, 노조보다는 국민을 생각하면서 노동유연성 확대, 임금 확대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어젠다 2010'과 노동개혁인 '하르츠개혁'을 추진했다. 비록 개혁 후 정권을 잃었지만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그때의 개혁으로 독일은 오늘날 유럽 최강자가 됐다.

―저출산·고령화는 단순히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경제의 문제다. 해법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저출산·고령화는 우리 경제활력에 치명적이다. 정부가 10년 동안 저출산대책에 쏟아부은 예산이 120조원에 이르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은 일본에도 미치지 못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가족계획정책을 할 때는 범정부적으로 나서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족계획에 성공한 국가가 된 바 있다. 이번에도 범정부적 컨트롤타워를 분명히 해야 한다.

[J노믹스 J턴하라] 경제 원로 진념 前 부총리에게 듣는다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미래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야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가야 할 방향이면 결기를 가지고 돌파해내야 한다. 예컨대 투자개방형(영리) 병원이 최근 제주도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우리나라의 앞선 의료기술과 장비에도 싱가포르나 태국, 대만 등에 비해 의료관광 숫자가 적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논란이 생기자 정부에서는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일은 없다며 진화하기에 급급했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려면 각 부처 장관들이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설득에도 나서야 한다.

―혁신은 기업들이 하는 것인데, 기업들이 너무 위축됐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은 수출·투자·세금을 내는 주체다. 따라서 기업하는 사람이 '애국자'다. 기업이 움츠리면 다시 튀어오를 수 있지만 위축되면 기어가게 된다. 기업하는 사람이 보람을 느낄 수 있게 규제를 혁신해 기업환경을 개선해주고 불확실성을 제거해줘야 한다. 아울러 기업의 자율성과 끼를 살려줘야 한다. 현재 정부는 자금지원을 통해 기업을 움직이게 만들려고 하는데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먼저다.

―기업인들에게도 조언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다.

▲경영계도 반성해야 한다. 공정·투명·책임경영을 위한 10대 강령 같은 것을 만들고 국민에게 달성을 약속했으면 좋겠다. 강령 내용에는 일감몰아주기 근절부터 협력사와 상생·동반성장, 투명한 부의 상속, 하도급 문제, 가치경영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극적 약속으로는 현재 난국을 돌파하기가 어렵다.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저성장 고착화를 극복할 방법은.

▲우리 경제를 보면 앞으로 10년은 더 세계 평균 성장률에 근접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핵심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다. 규제를 풀고 기술·경영·노동에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IMF사태(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대기업이 정도경영·투명경영을 유도했을 뿐이지 '대기업을 죽인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당시 정부는 벤처를 육성해서 중소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줬다. 이처럼 정부는 기업혁신이 가능하도록 생태계를 조성해줘야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북한과의 협력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남북경협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감성을 지양하고 쿨(cool·이성적)하게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 철도나 도로 등 하드웨어적 부분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북한이 개방되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IMF(국제통화기금) 가입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모든 통계가 투명해야 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보장책도 만들어줘야 한다. 이런 소프트웨어적 조언이 중요하다.

―홍남기 부총리가 이끄는 2기 정부 경제팀이 가장 집중해서 추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올해가 막중한 시기다. 1년 반 성과를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다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대책을 내놨으면 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론이 도출되면 실천해야 된다. 예컨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어렵다면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해야지 계속해서 임시방편을 내놓으면 시장은 왜곡되기만 할 것이다. 올해 여러 가지로 국제 경제환경도 어렵고 세계 경제도 둔화로 들어간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경제는 이미 둔화 기조에 있고 이른바 '엘자(L)형 저성장구조'에 진입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려고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업은 정부를 믿고 투자할 수 있고, 노동자는 좋은 일자리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은 눈에 보인다. 몰라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기와 실천력이다.

정리=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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