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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류현진과 기쿠치의 독특한 선택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2 15:26

수정 2019.01.02 15:26

류현진 /사진=fnDB
류현진 /사진=fnDB

기쿠치 유세이 /사진=fnDB
기쿠치 유세이 /사진=fnDB


독특한 계약(novel contract)이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 ESPN이 1일(한국시간) 일본인 투수 기쿠치 유세이(28)의 계약 사실을 보도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기쿠치는 이 날 시애틀 마리너스구단과 3년 4300만달러(약 490억원)에 합의했다.

굳이 합의라고 표현한 이유는 메디컬 테스트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3년 후 4년 6600만달러라는 조건으로 기쿠치를 묶어 둘 수 있다. 시애틀이 계약 연장을 바라지 않아도 기쿠치는 2022년 1300만달러에 1년 더 마리너스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그것이 싫다면 FA(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하면 된다.

기쿠치는 4년 5600만달러를 사실상 손에 넣은 셈이고, 구단은 일본 최고 투수 가운데 한 명을 최대 1억900만달러에 7년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절묘한 타협이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괴상한 계약은 없었다.

류현진(32)은 지난해 11월 LA 다저스 구단의 퀄리파잉 오퍼를 받아 들였다. 이전까지 총 73명의 선수가 오퍼를 받았으나 5명만 수용했다. 이번에도 오퍼를 받은 7명 가운데 류현진만 이를 수용했다. FA 재수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FA 재수생들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지금껏 오퍼를 받은 80명 중 6명이 재수를 택했다. 전체의 7%에 불과하다. 평탄치 않다고 한 이유는 류현진 이전 5명의 FA 재수생들 가운데 1년 후 더 나은 계약을 맺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 중 최악은 2년 전 필라델피아가 내민 1720만달러 오퍼를 수용한 제레미 헬릭슨이다. 2016년 12승 10패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한 당시 29살의 헬릭슨은 이듬 해 몸통에 추를 단 채 공중에서 추락했다.

헬릭슨은 2017시즌 도중 김현수(당시 볼티모어)-가렛 클레빙거와 1대2 트레이드로 볼티모어로 이적했다. 이후 10경기서 2승 6패, 평균자책점 6.97로 부진했다. 결국 워싱턴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어야 했다. 천상에서 지옥으로 굴러 떨어진 셈이다.

이런 열악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이 FA 재수의 길을 택한 이유는 나름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누구나 대형 장기 계약을 꿈꾼다. 올 해보다는 내년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 것이다. 류현진은 2018년 허벅지 부상으로 7승 3패에 그쳤다.

류현진은 여느 겨울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용일 트레이너를 고용해 몸만들기부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부상 방지라는 사실을 자각한 결과다. 헬릭슨의 발목을 잡은 것도 결국 부상이었다.

기쿠치는 두 가지 점에서 시애틀을 택했다. 일본과의 거리가 가깝고, 일본인 투수와 선발 경쟁을 벌이지 않는 구단을 물색해 왔다. 태평양 연안 팀 가운데 다저스에는 마에다 겐타, 에인절스에는 오타니 쇼헤이가 있다. 결국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로 좁혀 졌고, 전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류현진과 기쿠치의 에이전트는 같은 사람이다. ‘악마’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다.
그는 류현진과 기쿠치에게 흔치 않은 길을 가게 조언했다. 류현진에겐 누구도 성공 못한 FA 재수, 기쿠치에겐 생소한 3년+4년 계약을 맺게 했다.
둘 다 독특하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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