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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한국판 초대형IB의 자격

김경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3 17:19

수정 2018.12.13 17:19

[여의도에서] 한국판 초대형IB의 자격

"도대체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최근 만난 모 대형증권사의 투자은행(IB) 담당 헤드는 2019년 새해 계획을 묻자 한숨부터 쉬었다. 증권업계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에게서 나온 대답치곤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는 "기업들의 IPO(기업공개)도 증시침체로 대폭 줄고, DCM(채권발행시장) 수수료도 경쟁이 격화돼 수수료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수익을 올리는 데 한계에 다다랐다"며 "결국 너도나도 부동산(특히 해외부동산)에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IB에 떨어지는 부동산 딜은 질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좋은 매물은 현지에서 다 소화하고, 그나마 오는 B급 물량도 브로커들과 주관사들에 수수료를 떼주면 손에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꿈꾸며 금융당국이 초대형IB 인가를 내준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국내 IB업계엔 냉기가 감돈다. 실제 증권사들의 IB수수료는 시장 침체에 따른 인수 및 주선, 합병이 줄면서 수익 감소가 현실화됐다.

최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올해 3·4분기 IB 관련 수수료(누적 기준)는 1조2299억원으로, 전년동기(1조2852억원) 대비 4.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수료수익이 20.7%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주식시장 침체, 대내외 경기불안 등으로 증권사들의 야심작으로 기대를 모은 IB 영업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 발행어음 판매를 개시한 곳도 현재까지 5곳의 초대형IB 가운데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두 곳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줄곧 주장해온 법인 지급결제 허용도 규제 허들에 막혀 있다. 결국 할 수 있는 사업분야는 사실상 막아놓다보니 '제살 깎아먹기'식 인력 스카우트와 미투(Me too) 영업,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양매도 상장지수증권(ETN)'으로 히트를 치자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도 일제히 판매에 나섰다.

급기야 미래에셋대우는 한국투자증권의 양매도 ETN 히트의 주역인 임원과 실무 차장 등 핵심 인력들을 거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하며 여의도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 가운데 '22억원 연봉 신화'로 화제를 모은 김연추 한국투자증권 투자공학부 팀장은 당시 오너와 사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아 이슈가 된 인물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이들이 한국투자증권을 퇴사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성과급을 보장해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금액이 3년간 100억원에 이른다고 관측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임원은 "결국 일 잘하는 선수 영입 경쟁이 증권사 IB의 한해 장사를 판가름한다"며 "증권사들 입장에서도 신사업에 골몰하기보다는 경쟁사의 우수인력 스카우트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이름에 걸맞은 초대형IB 행보가 첫걸음부터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위기 속에도 길은 있는 법이다. 지금이라도 남들이 하는 사업에만 눈독 들이기보단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딜이나 유망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 투자 등 현장 속에서도 특화영역을 추구해볼 만하다.
주식에 이어 내년 부동산 경기도 암울하다는데 부동산 투자에만 올인한 증권사들은 곡소리가 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kakim@fnnews.com 김경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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