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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경의선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06 17:04

수정 2018.12.06 17:04

1930년대에는 서울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직통열차가 운행됐다. 영국 런던까지 가는 열차표가 판매되기도 했다. 경의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는 일제의 식민지였지만 서울은 경의선으로 대륙과 연결돼 있었다.

경의선에는 민족의 역사가 서려 있다. 서울~신의주 518.5㎞ 구간에 철도가 놓인 것은 1906년이다.
러일전쟁을 전후해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 지배권 확보를 위해 서둘러 철도를 깔았다. 경의선 초기 40년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었다. 토지와 노동력, 군수물자의 가혹한 수탈은 항일투쟁의 원인이었다.

광복 이후 60여년간 경의선은 분단의 상징이 됐다. 운행구간은 38선 이남의 서울~개성 사이 74.8㎞로 쪼그라들었다. 이마저도 6·25전쟁이 일어나자 1951년 6월부터 완전히 멈춰섰다. 남북 간에 철도연결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세기 말 해빙무드가 조성되면서부터다. 남과 북은 1992년 2월 처음으로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항로를 개설한다'고 합의했다. 이어 김대중정부는 경의선 복원공사를 했으며, 노무현정부는 문산(남)~봉동(북)간 화물열차를 운행했다. 그러나 해빙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2008년 12월부터 다시 중단됐다.

올 들어 경의선이 다시 대전환의 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이뤄진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분단에서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의선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민족의 대동맥이다. 경의선 복원은 100년이 넘도록 섬 아닌 섬으로 살아온 대한민국이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교두보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남북철도공동조사단 남측 참가자 28명이 현장조사를 마치고 5일 돌아왔다.
이들은 엿새 동안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경의선 북측 구간 400㎞에서 노반, 선로, 터널, 교량 상태 등을 점검했다. 유지·보수가 부실해 전구간을 시속 20~60㎞로 달렸다고 한다.
KTX가 시속 300㎞로 평양과 신의주를 지나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함차게 달리는 그날을 그려본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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