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타계한 '아버지 부시', 걸프전 승리, 냉전 종식에 기여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01 20:23

수정 2018.12.01 20:23

(FILES) In this file photo taken on July 31, 1991 shows US President George Bush (L) and his Soviet counterpart Mikhail Gorbachev during a press conference in Moscow concluding the two-day US-Soviet Summit dedicated to the disarmament. - Former US president George H.W. Bush, who helped steer America
(FILES) In this file photo taken on July 31, 1991 shows US President George Bush (L) and his Soviet counterpart Mikhail Gorbachev during a press conference in Moscow concluding the two-day US-Soviet Summit dedicated to the disarmament. - Former US president George H.W. Bush, who helped steer America through the end of the Cold War, has died at age 94, his family announced late Friday November 30, 2018. 'Jeb, Neil, Marvin, Doro and I are saddened to announce that after 94 remarkable years, our dear Dad has died,' his son, former president George W. Bush, said in a statement released on Twitter by a family spokesman. (Photo by Mike FISHER / AFP) /사진=연합 지면외신화상

지난 11월 3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조지 HW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지난 1991년 걸프전 승리를 이끌었으며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

부시 가문을 대표해 43대 미국 대통령인 장남 조지 W 부시는 성명에서 “잽과 닐, 마빈, 도로와 나는 94년의 위대한 삶을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가 별세했다는 것을 발표하게 돼 슬프다”며 “그가 살아온 삶과 보여준 사랑이 자랑스럽다”라고 밝혔다.

'아버지 부시'는 지난 1924년 6월12일 매사추세츠주 밀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프레스콧은 은행가로 후에 코네티컷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던 인물이다.

부시는 매사추세츠 앤도버의 필립스아카데미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8세에 미 해군에 입대해 그해 임관했다.

최연소 미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 전투에서 58회를 출격했다.


그러던 중 1944년 일본군이 쏜 대공포에 그가 탄 조종사가 추락했으나 잠수함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20세에 귀국해 3년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난 한살 연하인 바버라 피어스와 결혼해 43대 대통령이 된 조지와 잽, 닐, 마빈과 두딸 로빈과 도로시를 뒀으나 로빈은 3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부시는 예일대학교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야구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졸업후 텍사스주로 옮겨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하다가 정치에 뛰어들어 연방 하원의원에 두차례 당선됐다.

1970년 상원의원에 도전해 낙선됐으나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중국 베이징 미 연락사무소 대표,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1980년 공화당 경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 패했지만 런닝메이트로 지명돼 8년간 부통령을 지냈으며 198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두카키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1989년 1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전체주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말했으며 그 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통일되고 옛 소련이 붕괴됐다.

1989년말 마약거래 혐의로 의심받아온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을 체포하기 위해 미군을 파나마로 투입시켜 미국 법정에 서게 했으며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 점령하자 30개국을 끌어모아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을 통해 100시간만에 탈환하는데 성공하며 지도력을 발휘했다.

지난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을때 대중국 제재를 강행하면서도 두나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나서 클린턴 행정부에서 오슬로 협정을 맺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같은 국제 사회에서의 업적에도 경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대선 출마 당시 “내 입술을 읽으시오. 새로운 세금은 없다”라며 증세를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재정적자 늘어나자 결국 올려야 했으며 미국내 저축과 대출 감소 문제를 겪어야 했다. 여기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1992년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패하면서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주로 돌아왔다.

그의 장남 조지 W 부시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해 두차례 임기를 역임하면서 이들은 미 역사상 두번째 부자 대통령이 됐다.

대선에서 자신을 이긴 클린턴과 동남아시아 쓰나미 피해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구호 활동에 나서면서 “선거에서 서로 경쟁했다고 그것이 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건강 악화로 휠체어로 이동하기 전인 2014년 90회 생일 기념으로 헬리콥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부시 가문 대변인 짐 맥그래스가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추후 발표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텍사스주 칼리지스테이션 소재 텍사스A&M대 캠퍼스에 위치한 부시 도서관에 지난 4월 먼저 안장된 부인 바버라의 묘 옆에 나란히 묻힐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해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애도 성명을 내고 “멜라니아와 저는 지난밤 별세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잃은 미국의 애도에 동참한다”며 “부시 대통령은 진실성과 위트, 신념, 가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통해 많은 미국인들을 공공 서비스에 참여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