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플라스틱의 굴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4 17:07 수정 : 2018.11.14 17:07

환경오염의 주범 몰리며 '신이 내려준 선물'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



현대인에게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당장 오늘 아침 책상머리를 둘러보자. 책상과 의자, 데스크톱, 전화기, 전원장치, 휴지통, 각종 필기류 등 사무집기류는 물론이고 이어폰, 슬리퍼, 지갑 속의 신용카드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것만 30가지가 넘는다. 플라스틱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셈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상아를 대체해 당구공을 만든 데서 탄생한 플라스틱은 20세기 들어 나일론에 이어 석유 부산물인 에틸렌·프로필렌 등 합성수지 재질로 진화를 거듭했다.
내구성과 경제성을 강점으로 유리, 나무, 철, 종이, 섬유를 대신해 식품, 화장품, 세제, 의약품 등 산업과 생활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렇게 쓰임새가 커지면서 1950년대만 해도 연간 100만t이 안되던 플라스틱 생산량이 1976년에는 5000만t으로 늘었고, 지금은 3억t 넘는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진다.

플라스틱 범람과 함께 장점으로 꼽히는 내구성이 환경파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플라스틱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50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폐플라스틱은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다. 해마다 10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든다. 북태평양에는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폐플라스틱 섬이 생겼을 정도다.

진짜 문제는 폐플라스틱의 유해성이다. 태울 때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물질을 배출하고, 일부 물질은 환경호르몬을 만들어 면역기능을 떨어뜨린다. 분해 과정을 거치면서 지름이 1∼2㎜ 이하인 미세플라스틱으로 바뀌며 생태계를 교란한다.

지난해 영국의 한 방송사 해양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된 바닷새 앨버트로스가 새끼들에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바다거북 등 해양동물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는 일도 다반사다. 이쯤 되면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편의를 주면서도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세계적 사전 출판사인 영국 콜린스는 최근 올해의 키워드로 '싱글유스(Single-use)'를 꼽았다. 싱글유스는 말 그대로 '일회용'이다. 2013년 이후 이 말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인류에게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범람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경각심을 높였다는 게 키워드 선정 배경이다. 실제로 플라스틱 싱글유스에 의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부각되며 세계 각국과 기업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까지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대 등 10가지 싱글유스 제품 사용을 2021년부터 제한하는 입법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2027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제로화하기로 했다. 기업들도 일회용품과 전쟁을 펼친다. SK이노베이션은 일회용품 퇴출을 위해 '아.그.위.그'(I green We green) 캠페인에 나섰다. 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개인 머그컵 사용하기, 테이크아웃컵 사용 안하기 등의 활동을 펼친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7월 '그리너(Greener) 캠페인'을 통해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로 바꿨다. 지난주 서울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카페쇼'에서는 쌀로 만든 빨대, 옥수수로 만든 컵, 야자나뭇잎 접시가 선보였다.

산업계에선 플라스틱은 앞으로도 진화하며 영역을 더 넓힐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생산에 앞서 생애주기를 고려해야 한다. 플라스틱을 두고 '20세기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한다. 과연 선물일지, 재앙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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