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국립현대미술관장이라는 자리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08 17:17

수정 2018.11.08 17:17

[기자수첩] 국립현대미술관장이라는 자리

요즘 미술계의 이목은 온통 국립현대미술관에 쏠려 있다. 다음달 중순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의 임기가 끝나면서 새 관장으로 누가 올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최근 인사혁신처가 진행한 공모에 따르면 관장직에 도전한 이는 13명으로 꽤 많은 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매일 하마평이 돌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유력주자로 두드러지지 못해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후보자는 많지만 적임자가 가려지지 않아서 어쩌면 심사위원들이 '적격자 없음'이라는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어쩌면 마리 관장은 새로운 관장이 올 때까지 한동안은 자리를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유력자가 없는 다수의 경쟁상황은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후보자가 너무 많은 이 상황 때문에 오히려 '관장의 임기와 공모제도는 과연 적절한가' 하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3년의 임기는 너무 짧고, 그마저도 정권이 바뀌면 임기를 못 채우는 사례가 다반사인 상황은 조직 구성원들을 참담하게 만든다. 적임자를 선정하기 위한 심사기준 역시 정권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수장이 와도 그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걷고 신뢰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내부가 불안해지니 권력의 공백기마다 조직의 행보가 갈지자를 보인다는 평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짚고 화두를 던져야 할 조직이 자리 하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하면 던지는 포석마저 여러 방향으로 흩어질 것이 뻔히 보여서 걱정이다.

외국에도 이런 사례가 없겠냐마는 대부분 잘 나가는 곳은 자리 하나 때문에 조직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전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장기적 비전과 가치가 조직 내 공유돼 있고 굳건하기에 일관된 방향성은 새로운 수장이 온다 해서 바뀌지 않는다. 신임 관장 역시 기존의 방향이 옳다면 자신의 치적을 위해 비전을 무리하게 틀지 않는다. 일관된 방향성이 조직의 든든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관장은 3년의 전시를 계획하는 큐레이터가 아니라 조직의 장기 비전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왕이면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로운 분이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뿌리가 깊이 내릴 수 있도록 향후 인사방식에 있어서도 무엇이 가장 옳은지 이참에 고민하고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길 바란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문화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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