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뒝벌 vs. 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07 16:44 수정 : 2018.11.07 16:44


나는 드라마를 구주(救主)로 영접한 사람이다. 매일 드라마로 행복하고, 드라마로 은혜롭다. 내가 매일 드라마를 향해 나아갈 때 내 옆에는 함께 달리는 장애인 친구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영진 PD. 드라마가 좋아 삼수까지 해서 KBS에 입사, 30년 동안 드라마트랙을 질주 중이다.
그는 항상 선두주자였다. 1998년 최수종, 채시라, 유동근이 주연한 '야망의 전설'이 그의 연출작이다. 하지만 19년 전 타고 가던 차가 전복됐고, 조수석에 앉았던 그는 넉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지금은 휠체어를 탄 1급 장애인이다. 그가 죽음의 기로에서 헤맬 때 그와 친했던 최수종, 이승연, 염정아, 추상미, 류시원, 김민종은 CF에 출연해 전액을 치료비로 내놓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동료와 스태프와 배우들이 그를 좋아했고 사랑했다.

드라마를 향한 그의 열정은 장애인이 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늘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몸부림쳤다. 올해도 휠체어를 탄 채 드라마스페셜 '엄마의 세번째 결혼'을 멋지게 만들어냈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저자의 저 불굴의 투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최근 그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그 비밀을 알아냈다.

"뒝벌이라고 아시는지요? 몸길이는 14~20㎜입니다. 활동성이 높아 '윙윙거린다'는 의미에서 영어로 Bumble Bee라고 합니다. 물리학자 제티 K Zetie에 의하면 벌의 일종인 범블비는 날 수 없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날개에 비해 몸이 뚱뚱해 유체역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범블비가 이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오늘도 먹이를 향해 열심히 날아다닌다는 사실입니다. 뒝벌은 어떻게 날아다니는 걸까요? 바로 여기에서 사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뒝벌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나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닭은 역학적으로 보면 충분히 날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 합니다. 하지만 닭은 날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날아야 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닭께서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뭐하러 날아다니냐? 그냥 땅바닥만 잘 보고 걸어 다녀도 먹을 걸 충분히 찾을 수 있는데…' 이래서 '사명과 능력'은 차이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거랍니다."

그는 얼마 전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드라마가 하고 싶어 3수까지 해서 입사한 KBS, 연출 25년을 돌아보니 미숙하고 부족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공부하겠다. 이번 생에서는 틀렸다고 포기하지 않겠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천국에 가서라도 제대로 된 연출을 하겠다."

드라마의 신께서 내게 뒝벌을 보내주셨음을 오늘에야 깨닫는다.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장
네이버채널안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