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사립유치원 사태, 정부는 다 잘했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05 16:58 수정 : 2018.11.05 16:58

지원금은 부모에 주는 게 원칙..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에 미적
한유총 응징보다 머리 맞대길



만 3~5세 무상보육, 곧 누리과정은 이명박정부에서 처음 시작했다. '누리'란 이름은 2011년 정부가 공모로 뽑았다.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때 만5세 공통과정에 누리과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공통'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갈린 보육·교육 과정을 하나로 묶는다는 뜻이다. 5세 누리과정은 2012년 3월 첫발을 뗐다. 이어 2013년부터 3~5세로 대상을 넓혔다.

말썽은 박근혜정부 때 터졌다. 돈이 문제였다. 무상보육비를 누가 내느냐를 두고 보수 중앙정부와 진보 시·도 교육청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어린이집 지원금이 말썽을 부렸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교육감들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비용은 중앙정부가 대라고 버텼다. 해마다 정기국회에선 이 문제를 놓고 여야가 막판까지 실랑이를 벌였다. 문재인정부는 이 난제를 단칼에 풀었다. 어린이집 보육예산은 중앙정부가 100% 떠맡기로 했다. 이게 누리과정 1라운드다.

2라운드는 유치원에서 불거졌다. 사립유치원에 준 조(兆) 단위 누리과정 지원금이 동티가 났다. 큰돈이 왕창 풀린 게 사달을 일으켰다. 유치원은 교육부 관할이다. 교육부도 회계가 골칫거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사립유치원 회계를 손보려 했다. 하지만 미처 손을 대기도 전에 국회에서 일이 터졌다. 비리 유치원과 맞서 싸운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이게 누리과정 2라운드다.

사립유치원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유치원이 사유재산이라도 지원받은 세금은 칼같이 써야 한다. 유치원도 엄연한 학교다. 학교 설립자, 원장에겐 그에 걸맞은 도덕과 자질이 요구된다. 폐원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정부와 여론에 맞서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영 밉상이다.

그럼 정부는 다 잘했나. 그건 아니다.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한유총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학부모에게 직접 주라고 말한다. 근거 있는 얘기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무상보육비는 보호자에게 주는 게 원칙이다(24조②항). 교육부는 이 원칙을 깨고 보육비를 사립유치원에 직접 준다. 행정편의주의다. 부모를 못 믿어서 그럴 수도 있다. 돈을 받아놓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그뿐이니까. 이참에 교육부가 생각을 바꿔 이 원칙을 한번 지키면 어떨까. 하늘처럼 높은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고려할 때 아이한테 온 지원금을 떼먹을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정부가 유·보(어린이집) 통합을 미적대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복지부가 따로 관리한다. 그러다보니 헷갈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책은 단순할수록 좋다. 엄마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지, 어린이집에 보낼지 왜 고민해야 하나.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한쪽으로 통일하는 게 좋다. 그런데 두 부처의 이기주의가 걸림돌이다. 정부는 이 케케묵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지난주 정부 대책회의엔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 차장이 참석했다. 참 고리타분하다. 집값 오른다고 경찰·국세청 동원하더니 이젠 사립유치원 겁줄 때도 권력기관을 동원한다. 한유총은 일산 킨텍스에 유치원 설립자·원장 수천명을 불러모아 세를 과시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아래위 검은 옷을 차려입었다. 이런 걸 도긴개긴이라고 해야 하나. 제발 힘자랑은 그만두시라. 정부와 한유총은 하루속히 만나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누리과정은 저출산 충격을 줄일 묘책으로 꼽힌다. 잘 키우진 못할망정 쪽박을 깨선 안 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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