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무모한 정부, 성숙한 한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29 16:57 수정 : 2018.10.29 16:57

금리 올리라고 재촉하는 정부, 올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한은.. 집값과 금리 인과관계 안보여



금리인상을 둘러싸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취하고 있는 입장은 통화신용정책사에 이변으로 기록될 만하다. 정부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주기를 바라는 것이 상례다. 적어도 올리지는 않도록 입김을 불어넣는다. 역대 정부나 외국 정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연준이 미쳤다"고 했다. 연준(Fed)이 올 들어 세 번씩이나 금리를 올리자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발끈했다. 경기와 고용을 책임진 정부로서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다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국회 답변에서 "금리인상을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올리라는 압력성 발언이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발 더 나갔다. 이달 초 국회에서 "지난 정부의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과잉이 집값 폭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답변했다.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한은에 금리를 내리라고 압력성 발언을 하는 것을 종종 봤다. 하지만 올리라고 주문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총리와 장관이 연이어 공개적으로 금리인상론을 편 것은 용기일까, 만용일까. 어느 쪽이든 이변이다.

정부가 금리인상론을 펴는 이유는 집값 때문이다. 그러나 집값을 잡으려고 금리를 동원하는 것은 번짓수가 틀렸다. 금리는 모든 경제주체들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거시정책 수단이다. 집값만 잡는 것이 아니라 가계빚에 쪼들리는 수많은 서민과 경영난에 시달리는 영세 자영업자, 소기업까지 한꺼번에 잡을 위험성이 다분하다.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집값으로 최대한 좁힐 수 있는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리를 올리면 집값을 잡을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박근혜정부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2014년 여름부터 부동산경기 띄우기에 나섰다. 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린 결과 박근혜정부 2년 동안(2014년 말~2016년 말) 전국 집값은 6.8% 올랐다. 문재인정부는 반대로 금리를 한차례 올렸다. 그러나 집값은 더 가파르게 올랐다. 문재인정부 1년4개월 동안(2017년 5월~2018년 9월) 8.4%나 올랐고, 특히 금리인상 이후 상승폭이 커졌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집값은 금리 움직임과 상관없이 올랐다. 집값과 금리 사이에 일정한 인과관계가 별견되지 않는다.

한은이 금리를 올리라는 정부 수신호에 반응하지 않은 것도 이변이다. 통화가치 안정을 존재 이유로 삼는 한은은 태생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는다. 그런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정부가 박수를 보내겠다는데도 올리지 않았다. 정부는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성급하게 금리인상 카드를 꺼냈을까. 한은은 금리인상 본능을 어떻게 참아냈을까. 정부는 무모하고, 한은은 성숙하다.

한·미 간에 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금리인상 시기를 한없이 미룰 수는 없다. 그러나 당장 기계적으로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경기가 불황국면으로 들어가는 단계에서 금리까지 올리면 경기 하락폭을 더 키우게 된다. 감기만 앓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을 독감으로 만들어 몸을 축낼 이유는 없다. 경기 한파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집값 폭등을 걱정하는 정부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 한은은 적어도 연내에는 금리인상을 자제해주기 바란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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