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규제 샌드박스법 불시착은 안된다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8 17:04

수정 2018.10.18 17:04

[데스크 칼럼]규제 샌드박스법 불시착은 안된다


모래 놀이터에선 규제가 없다. 금방 허물어질 모래성을 쌓는다고 건축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물을 채운 모래 댐이 넘쳐 범람한다고 철창신세를 지지도 않는다. 이런 규제 없는 모래 놀이터에 근거한 법이 바로 '규제 샌드박스법(Sand box law)'이다. 이 제도는 영국에서 핀테크산업 육성을 위해 처음 시작됐다.

문재인정부에서도 규제개혁 방안 중 하나로 채택됐다.
사업자가 새로운 제품·서비스에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신청하면 법령을 개정하지 않고 심사를 거쳐 시범사업, 임시허가 등으로 규제를 면제·유예해 그동안 규제로 인해 출시할 수 없었던 상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고, 문제가 있으면 사후 규제하는 방식이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래 놀이터에 규제를 두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다.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11일 주최한 제11회 유통선진화포럼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유통산업의 샌드박스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4차산업 및 인공지능(AI) 시대에 신유통산업 출현을 규제로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유통시장 등장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김 위원장은 기대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유통기업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 될 길이 열린 셈이다. 이전 정부의 '전봇대 뽑기' 법안처럼 기존 사업에 대한 규제를 막는 것과 달리 샌드박스법은 미래사업에 대한 규제를 푼다는 의미가 포함돼 신사업 육성법이란 평가를 받는다. 유통산업은 급변의 도약 시기에 놓여 있지만 규제라는 걸림돌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서울 여의도 신축쇼핑몰이 완공되면 드론을 통한 음식물 배달을 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서 드론을 띄우는 일은 제약이 적지 않다. 또 롯데 세븐일레븐은 점원 없이 자동화를 통한 편의점 운영을 시작했다. 만약 이곳에서 담배와 주류 등을 판매할 때는 구매자의 연령 확인을 위해 어떤 식으로 규제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모래 놀이터를 다시 살펴보자. 부모의 허락 속에서 모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나마 행복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예 모래 놀이터에 아이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모래놀이 후 아이들 손을 씻겨야 하고, 신발 속 모래를 떨어내고, 아이들 옷을 세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래놀이를 사전에 차단한다. 정부 규제도 마찬가지다. 핀테크사업, 암호화폐의 유통시장 적용 등을 위해선 오래된 한국은행 주도 화폐시장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공무원들의 새로운 시장에 대한 고밀도 연구와 대응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주도 화폐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도 있다.
공무원들은 아무래도 불편해진다. 규제 샌드박스법의 불시착 여부는 결국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는 공무원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모래놀이를 막는 부모들처럼 공무원들의 불편함 때문에 유통산업 성장을 막는 규제가 돼선 안된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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