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고용위기, 기업관부터 바꿔라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5 17:06

수정 2018.10.15 17:06

[염주영 칼럼] 고용위기, 기업관부터 바꿔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사흘째 되는 날(지난해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갔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임기 내에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이 첫 방문지를 인천공항공사로 잡은 것이나, 첫 외부일정의 주제를 비정규직 문제로 선정한 것 모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정권의 사활을 걸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달 초 모든 공공기관에 두 달짜리 알바 일자리를 만들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공공기관들은 요즘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5000명까지 단기 알바생을 뽑느라 바쁘다.
공공기관 사람들은 정부 정책이 종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은 8개월째 계속되는 극심한 고용부진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증가폭은 가까스로 마이너스 위기를 면했지만 고용위기는 여전하다. 13년 만에 최악인 실업률 탓에 문재인정부 경제팀은 물불 안가리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흐름을 역전시킬 기회가 있었지만 붙잡지 않았다. 고용악화가 3개월을 넘겼을 때 추세적 변화로 보고 대응했어야 했다. 고용악화가 처음 나타난 것이 지난 2월이었으니 적어도 6월쯤에는 일자리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8개월을 흘려보냈고, 그사이 고용은 끝없이 추락했다.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나서야 원인치료를 포기하고 진통제(단기알바)만 놓겠다는 건 무책임하지 않은가. 문재인정부 경제팀은 정책 대응능력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문재인정부의 일자리정책 실패가 기업관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정부는 기업을 노동자를 옥죄는 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런 시각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반기업 정책을 펴야 한다는 정서로 발전했다. 이것은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행하는 긍정적 역할에는 눈을 감고, 부정적인 한 부분만 떼어내 전부라고 침소봉대하는 것과 같다. 경제활동을 크게 생산.소비.투자.고용의 네 부문으로 구분한다면 이 가운데 생산.투자.고용의 세 부문을 책임지는 곳이 기업이다.

특히 고용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민간과 공공부문의 일자리 분포는 10대 1이고, 민간 일자리 10개 중 7~8개는 기업에서 나온다. 기업을 빼놓고 일자리정책을 논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기업을 멀리하고 공공부문에 의존한 문재인정부 일자리정책은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낮았다.

지금이라도 원인을 알면 병을 고칠 수 있다. 경제는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그에 걸맞은 실적을 내지 못하면 쓸모없다. 지금은 남북 문제에서 문 대통령의 화려한 개인기로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지만 경제가 무너지면 사상누각이다. 민생이 어려워지면 정권에 박수 칠 국민은 없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도식적 이념틀을 버리고 실용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서생적 문제의식'보다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한 때다.

기업에 대한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기업을 적대시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친기업과 정경유착은 다르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면 건설적 협력관계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진정한 기업개혁은 소통을 통해 기업의 이해와 능동적 참여가 있을 때 가능하다.

y198301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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