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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풍등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0 16:41

수정 2018.10.10 16:41

풍등은 헝겊이나 종이로 만든 갓 속에 촛불이나 고체연료를 태워 뜨거워진 공기를 이용해 하늘로 띄우는 작은 열기구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대만 등에서 주로 새해맞이 소원을 비는 데 쓰인다. 요즘 들어서는 지역 축제나 전통놀이 행사 등 쓰임새가 늘어난다. 풍등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국지에서 촉한의 지략가 제갈공명이 적에게 포위됐을 때 풍등을 날려 구원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9년 개봉된 중국 영화 '적벽대전2'에도 제갈공명이 풍등을 날리는 모습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때 처음 이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남 통영의 한산대첩제에서 '풍등놀이'로 명맥이 이어진다.

이렇게 쓰임새 많은 풍등이 일을 냈다. 지난 7일 일어난 경기 고양 저유소 화재가 풍등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서다. 경찰 조사 결과 외국인 근로자가 인근에서 재미로 날린 풍등이 불씨가 돼 폭발사고를 일으켰다. 440만L의 기름을 담은 국가 주요시설이 지름 40㎝에 불과한 조그마한 풍등에 농락을 당했다. 피해액만 43억원에 달한다. 사고의 크기에 비해 주변 주민들의 인명과 재산 피해로 연결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주변 저장고로 불길이 번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고는 외국인의 실화만 탓하기에는 대한송유관공사 측의 대응이 너무 허술하고 황당하다. 경찰이 내놓은 CCTV 화면을 보면 풍등이 기름창고 잔디밭에 날아들고 18분 뒤에 불이 옮겨붙었다. 송유관공사는 CCTV를 45대나 가동하면서도 18분 동안 잔디에 불이 난 걸 아무도 몰랐다. 현장 관리자가 제때 확인했다면 작은 소화기로도 막을 수 있었다. 기름탱크 주변에 불이 붙기 쉬운 잔디를 깐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쯤되면 할말 다했다.

이번에도 시설관리 소홀이라는 안전불감증과 인재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그러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는 화재의 원인을 제공한 외국인을 선처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쇄도한다. 제2의 더 큰 사고를 막게 했으니 탓하기보다는 큰 상을 주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당국과 송유관공사는 '네탓'하기 이전에 '내탓'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poongnue@fnnews.com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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