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석록 칼럼]

철학이 빠진 부동산대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3 16:40 수정 : 2018.10.25 08:55

차석록 수석 논설위원
땜질식 처방이 부작용 불러
집값 떨어질 우려에 반발커
공급보다 삶의 질 개선해야



자료를 찾다가 뜻밖의 인물을 알게 됐다. 건축가 정기용이다. 그는 자연환경에 반하는 건축을 거부했다. 그래서 그를 '흙 건축의 대가' '생태 건축가''공간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공공건축에 평생을 다했다.

2008년 발간된 '사람 건축 도시'는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면사무소 설계를 맡은 정기용은 설계도는 그리지 않고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다녔다. 목욕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는 차를 타고 도시로 가야 목욕을 할 수 있는 주민들을 위해 면사무소 1층에 공중목욕탕을 만들었다. 어르신들은 농사로 지친 몸을 풀 수 있어 좋아했다.

주민들을 초대해도 뙤약볕 때문에 오지 않는 군수의 고민 해결사로 나섰다. 운동장 구석의 등나무 순들이 스탠드 쪽으로 자라도록 설치물을 세웠다. 아름다운 자연 그늘막이 만들어졌다. 전국 곳곳에 세운 '기적의 도서관'은 책걸상, 화장실 등 어린이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흙,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한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는 국민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 그의 자연친화적 생각과 설계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는 건축가였지만 정작 자신의 집을 짓지 못했다. 빌라에 월세로 살며 평생을 건축의 사회적 양심과 나눔의 건축을 실천했다. 그는 생전에 아파트 정문에 달린 '경축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라는 플래카드를 개탄했다. 가족끼리 오손도손 살던 집을 재건축이란 이름으로 때려 부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 임대아파트가 웬말인가'라는 플래카드에는 서글퍼했다. 거주의 가치보다 부동산 가치에 집착하고,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면적을 위해서 산다고 한탄했다.

정기용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들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미쳤다고 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9.13대책을 냈다. 그러자 해당 지역주민과 지자체는 집값 떨어진다고 계획을 취소하라고 아우성이다. 2기 신도시 주민들은 광화문으로 모일 기세다. "지하철이나 도로도 제대로 갖춰주지 않으면서 왜 서울의 집문제를 경기도에서 풀려고 하느냐"고 불만이다. 다주택자들을 규제하니 똘똘한 한 채를 위해 서울로 몰린다. 지방은 가격이 떨어지고, 미분양 홍수다. 서울만 살리고, 지방은 다 죽이냐며 난리다. 양극화가 갈등을 증폭시킨다. 서울에서도 터졌다. 우리 동네는 임대아파트를 지으면 안된다며 연좌시위를 벌였다. 볼썽사나운 모습을 지켜보던 무주택자들은 그럼 우리는 어떡하냐고 분개한다.

서울대 이성우 교수는 최근 집값 급등은 공급부족이 원인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서울 아파트의 투자가치는 증가하는데 자가보유율은 낮아지고 있다"면서 "수급불균형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비정상적 투기수요로 주택시장이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가 싸니 은행 돈으로 집을 사라고 부추겼다. 부동자금과 투기수요에 불을 붙였다. 현 정부는 불 끈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더 기름을 부었다. 실패한 부동산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과 젊은층 몫이다.

철학 없는 부동산정책이 지역 간, 계층 간 갈등을 부추긴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정기용은 감응의 미학을 건축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천했다"고 말한다. 감응(感應)은 깊은 배려와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정기용이 나에게 숙제를 던졌다. 좋은 집은 사는 사람의 삶의 흔적이 서서히 누적되어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와야 한다고 했다. 내가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내 집에서는 향기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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