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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빈 채널'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20 18:10

수정 2018.09.20 18:50

오스트리아 수도 빈(비엔나). 도나우강 상류에 자리 잡은 유럽의 고도로, 중세 이래 '음악의 도시'였다. 악성 베토벤이 생애 대부분을 보냈고,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고향이자 요한 슈트라우스의 감미로운 왈츠가 흐르는 곳이다.

빈은 오스트리아 제국 시대부터 소문난 국제외교 무대이기도 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이긴 유럽 제국들이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한 빈 회의(1814년 9월~1815년 6월)가 대표적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이후 1954년 독립과 함께 빈은 외교요람으로서 위상을 되찾았다.
1961년 '빈 외교관계법회의'에서는 관습법에 맡겨져 있던 외교사절의 특권과 면제가 국제법으로 조문화됐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미·북 간 대화 통로로 '빈 채널'이 급부상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북·미 협상의 주무대였던 스위스 제네바나 중국 베이징이 아닌, '빈'을 꼭 찍어 협상장소로 제안하면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빈에서 가능한 한 빨리 만날 것을 북한 대표자들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빈은 북한과 미국 대사관이 공히 주재하고 있는, 유럽에서 비교적 중립지역이다. 트럼프 정부도 이번 이례적 제안을 내놓으면서 이를 감안했을 듯싶다. 이와 함께 북핵사찰을 담당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했음직하다.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공동선언문에 없는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라는 문구를 끼워넣어 비핵화 의지를 강조한 게 그 방증이다.

'빈 채널'이 가동될 기미를 보이면서 과거 '빈 회의'의 비사가 생각난다. 당시 협상의 주역은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였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재편 방향에 대한 열강의 이해가 엇갈릴 때마다 회의를 중단시키고 무도회를 열었다.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라는 외교적 수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혹여 북한의 시간끌기 전술로 '빈 채널'이 '빈 회의'의 재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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