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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오르는 북한산 함께라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남건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3 17:20

수정 2018.09.26 11:39

[감동시리즈-우리함께] (10)장애인 산행 돕는 한국트레킹연맹
한국트레킹연맹은 지난 8일 세 명의 중증 지체장애인과 함께 북한산 우이령길을 올랐다. 특수제작된 휠체어에 앉은 참가자가 봉사자들과 산행을 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한국트레킹연맹은 지난 8일 세 명의 중증 지체장애인과 함께 북한산 우이령길을 올랐다. 특수제작된 휠체어에 앉은 참가자가 봉사자들과 산행을 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사람들은 41년 동안 북한산 우이령길에 갈 수 없었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 당시 우이령길이 이른바 '김신조 루트'였기 때문이다.
우이령길은 이후 폐쇄됐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던 우이령길은 지난 2009년 7월 생태탐방로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다시 우이령길을 오갔다. 그러나 임명학씨(66)에게 우이령길은 그로부터 9년이 더 지난 50년 동안 닫혀 있었다. 10여년 전 사고로 다리를 다쳐 산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씨는 지난 8일 특수제작된 휠체어를 타고 우이령길을 올랐다. 휠체어에 앉은 임씨는 연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산세를 눈에 담았다. 임씨는 "오늘 지금 여기 오니까 너무 푸근하다"라며 미소지었다. 가을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었다.

■브레이크 없는 휠체어…움직이고 멈추는 건 결국 사람의 일

"이 휠체어는 한 사람이 움직이려고 하면 넘어지니까 반드시 서로 소통하면서 산을 올라야 합니다." 김주연 한국트레킹연맹 사무국장이 이날 우이령길 입구에서 이같이 말했다. 40여명의 봉사자들은 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김 사무국장은 "최근 비가 많이 와서 길에 고랑이 깊게 파였다"며 "휠체어에 브레이크가 따로 없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서 올라주길 부탁드린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이령길은 곳곳이 패여 휠체어 바퀴가 디딜 공간조차 마뜩치 않았다. 평소엔 네 명의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밀고 끌지만, 이날은 여섯 명이 달라붙어 휠체어를 수시로 들고 올랐다. 봉사자들은 "하나 둘 셋!"을 연신 외치며 땀을 흘렸다.

산림청 산하 사단법인인 한국트레킹연맹은 지난 2012년부터 장애인과 함께 산을 올랐다. 현재 한국에서 중증 지체장애인들에게 트레킹 기회를 제공하는 단체는 한국트레킹연맹이 유일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한국트레킹연맹이 자체 개발한 트레킹 휠체어 일곱 대 덕분이다. 김 사무국장은 "독일에서 중증 지체장애인들이 특수 휠체어로 계곡을 건너는 사진을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며 "여러 업체를 수소문해 한 곳과 휠체어 개발 작업을 시작, 네 차례에 걸쳐 다듬고 고쳐 지금의 휠체어를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이날 트레킹엔 세 명의 장애인이 참여했다. 기자도 손을 보탰다. 맨앞 오른편에서 휠체어를 들고 끌었다. 트레킹 휠체어는 바퀴가 뒤쪽에만 두 개 달렸다. 손잡이가 길게 앞으로 난 앞쪽에서 들고 끌면, 뒤쪽에선 균형을 맞추며 미는 식으로 움직인다. 휠체어 무게는 25㎏. 사람이 타면 대략 75~100㎏ 정도다. 한 팔로만 드는데도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속도를 맞춰야 하는 부분이 신경쓰였지만, 10분 정도 하니 몸놀림이 가벼워졌다.

봉사자로서 참여한 이영섭씨(51)는 "처음 해봤는데 일단은 힘이 든다"라며 "그래도 이렇게 동행하니 더불어 사는 기분이 들어 보람차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씨는 또 올 거라 다짐하며 다시 휠체어 손잡이를 불끈 쥐었다.

장애인 트레킹용으로 특수제작된 휠체어는 여러 사람이 끌고 밀며 움직인다.
장애인 트레킹용으로 특수제작된 휠체어는 여러 사람이 끌고 밀며 움직인다.

■수백 명이 타고, 수천 명이 민 휠체어

한국트레킹연맹은 일년에 15~20번 정도 장애인들과 산을 오른다. 보통 장애인 단체로부터 연락을 받아 일정을 잡는데 1년 전부터 예약이 꽉 찰 만큼 반응이 뜨겁다. 김 사무국장은 "그만큼 중증 지체장애인들이 산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는 것이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벌써 100여차례 장애인들과 산을 오른 김 사무국장에겐 유독 기억에 남는 트레킹이 있다. 그는 "지난 2013년에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장애인과 우이령길을 오른 적이 있다"며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그분을 휠체어에서 내려드리는데 막 우시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국장은 "그분이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라고 말하면서 '너무 좋았는데 또 못 올 것 같다'라며 눈물을 흘렸다"라며 "그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입술을 다물었다.

트레킹 때마다 40~50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한다. 일곱 대의 휠체어에 교대 인원까지 포함해 보통 6~7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한번 왔던 사람이 나중에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힘들어 하지만, 몸은 뻐근하더라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윤동자씨(46)는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제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산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라고 운을 뗐다. 아울러 윤씨는 "서로 마음을 나누며 행복한 마음을 주고받는 게 좋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열린 한국트레킹연맹의 북한산 우이령길 산행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물을 나눠 마시고 있다.
지난 8일 열린 한국트레킹연맹의 북한산 우이령길 산행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물을 나눠 마시고 있다.

■"고맙다"로 가득찬 산길

김 사무국장은 지난해 인천시 부평구 소재 한 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신이 가르치는 반에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제주도 한라산으로 수학여행을 갈 때 휠체어를 한 대 빌릴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같은반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가고파 한국트레킹연맹에 대해 직접 알아봤다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흔쾌히 승낙했지만, 결국 대여는 이뤄지지 못했다. 휠체어 크기가 크다보니 제주도까지 옮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김 사무국장은 "그 고등학생이 한라산을 오르며 기뻐할 모습이 한참동안 눈에 아른거렸다"라며 아쉬워했다.

현재 한국트레킹연맹이 갖고 있는 특수 휠체어의 제작비용은 대당 600만원 수준이다. 한국트레킹연맹은 회원들의 회비와 더불어 복권위원회, 한국산림복지진흥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장애인과 함께하는 트레킹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곱 대뿐인 휠체어 대수를 늘리기엔 역부족이다. 김 사무국장은 "지금의 장비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나다 사례를 살펴보니 참고할 만한 지점이 있었다"라며 "캐나다에서 사용되는 휠체어는 접이식으로 돼 있어 승용차에도 싣고 다닐 수 있다"라고 부러워했다. 이어 그는 "접이식 휠체어를 여러 대 만들면 대여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더 많은 중증 지체장애인들이 산을 오갈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원할 때 휠체어를 쓸 수 있는 상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날 10년 만에 북한산을 다시 찾은 임씨는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봉사자들은 휠체어를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내가 고맙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이유는 같았다. 서로 '이렇게 좋은날 함께 산에 올라줘 고맙다'고 설명했다. 움푹 패인 곳이 많은 탓에 휠체어는 종종 바퀴를 멈췄다. 그러나 말소리는 여간해선 잦아들지 않았다. 앉아 있는 사람도 서있는 사람도 서로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사이 바퀴는 어느새 다시 굴렀다.

한국트레킹연맹은 이날 산행 중간에 숲해설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배순희 숲 해설가는 "오늘은 절기상으로 백로"라며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일교차가 심해져 이슬이 맺히는 때"라고 전했다. 배 해설가는 "조금만 지나면 우이령길에도 단풍이 그득할 것"이라며 "올해 겨울은 아주 추울 거라고 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얼굴 군데군데 햇빛을 묻힌 채 해설을 들었다.
그곳은 전혀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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