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외국계 보고서, 수작으로만 간주해선 안돼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3 17:18

수정 2018.09.13 17:18

[기자수첩] 외국계 보고서, 수작으로만 간주해선 안돼

외국계 보고서로 인한 주가 하락이 일어날 때마다 '외국계의 공습'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외국계 창구가 수익을 내기 위해 주가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간주하면 끝일까. 물론 이런 일이 있을 때 실제로 창구 매매 상위 목록에 외국계 증권사가 보인다. 그러나 최근 두 차례 연속해서 반도체 업종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담은 보고서는 상황이 다소 달라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시사하는 점도 있다.

첫 번째, 반도체 업종에 대한 외국계 보고서도 저점 매수를 위한 수단일까.

동기 측면에서 생각하자. '한국 대 외국'이라는 시각을 집어넣으면 판단은 흐려진다.
삼성전자는 연초 대비 주가가 14% 가까이 떨어졌다. SK하이닉스 주가는 3% 넘게 내렸다. 9만원을 넘은 적도 있다.

증권가는 두 종목 모두 3·4분기 최대 실적을 기정 사실로 본다. 밸류에이션은 저점이다.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보고서를 낸 뒤 고점 매도하는 게 더 간단하지 않을까. '순수한' 의도의 보고서라는 시각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둘째, 반도체 업종은 호황이라고 전망돼 왔다. 그런데 반대 의견을 낸 보고서에 왜 이리 민감할까. 일반적으로는 영어로 국내 종목을 평가한 경우가 적기 때문에 외국계 보고서의 반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는 '과감함'이 화제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증권가에서는 "외국계 보고서는 변화하려는 시점에서 의견을 과감히 개진하기 때문에 모멘텀에 강하다"며 "대부분이 인정하고 나서야 방향성을 수정하는 국내 증권사들과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한다.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긍정적인 내용을 보고서에 담아도 매수세는 들어오지 않고 주가도 잘 오르지 않는다. '안전 제일주의' 보고서라는 인식에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 보고서의 매도 비율은 단 0.2%였다. 증권가에서는 "월가에서 가장 훌륭한 연구원은 업체의 입장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뀌는 시장 상황을 지적해서 맞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험이 없는 안전한 보고서는 의미도, 가치도 잃는다. 이번 사례를 또다시 '외국계의 수작'으로만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가 외국계 보고서에 휩쓸리는 일은 몇 번이고 일어날 것이다.

bhoon@fnnews.com 이병훈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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