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정략 버려야 지방이 산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12 16:58

수정 2018.09.12 16:58

국토 균형발전 일구려면 공공기관 억지 이전보다 각 지역경제 먼저 살려야
[구본영 칼럼] 정략 버려야 지방이 산다

소설가 고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를 발표한 지 벌써 50년이 지났다. 그사이 수도권 과밀은 더 심화됐다. 2017년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5142만명 중 2551만명이 서울·인천·경기도에 살고 있다. 국토균형개발론이 힘을 얻는 이유다.

여권이 지역균형발전이란 휘발성 강한 이슈에 불을 댕겼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국회 연설에서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역풍을 우려한 듯 여당 측이 "확정된 숫자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7일 혁신도시 확대 개발을 다시 거론했다.

'지방 살리기'라는 명분 자체를 누가 부정하겠나. 그러나 정책 목표와 수단 간 정합성의 괴리가 부를 부작용이 늘 문제다. 이를 말해주는 예화 한 토막. 노무현정부 때인 2003년 10월 신행정수도연구단 주최 세미나에서 도시계획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해리 리처드슨 미국 남가주대 교수가 참석했다. 그는 "충청권으로 수도 이전은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주최 측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때 도시계획학도였던 필자는 당시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너무 가까워 인구분산 효과는 없고 교통체증만 유발할 것"이란 그의 논거는 결과적으로 '혜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세종시가 여태 후유증을 앓고 있으니…. 얼마 전 한국행정학회의 추산 결과를 보라. 세종시 이전으로 공무원 출장비용만 해마다 1200억원,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은 2조8000억∼4조8800억원에 달했다.

아무리 필요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잣대를 앞세워선 곤란하다. 수도 이전을 통한 지역균형개발은 해볼 만한 시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고 솔직히 토로하지 않았나. 출발부터 충청권 표를 의식했다면 당연히 좋은 취지가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혁신도시 확대 개발이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말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노무현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도 공공기관 1차 이전 프로젝트를 놓고 "가족과 찢어져 살고, 지가가 상승하면서…지역민 간 상대적 박탈감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전한 153개 기관은 이런저런 후유증을 겪고 있다. 특히 전주로 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는 글로벌 경쟁을 감당해야 할 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이다. 투자수익률도 곤두박질쳤다. 정치적 이유로 무작정 서울을 떠난 대가치곤 참담했다.

지역 살리기도 당위성을 넘어 옥석을 가려 추진해야 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한 정략이 끼어들면 균형개발이란 본뜻이 물 건너가게 된다. 벌써 불길한 조짐이 보인다. 최근 바른미래당이 발표한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전수조사 결과를 보라. 1651명의 공공기관 임원 가운데 365명이 이른바 '캠코더'(대선캠프·친문 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였다. 공공기관이 지역 정치꾼들의 대기소로 전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지역균형발전에 왕도는 없다. 양질의 기업이 입지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돈과 인재가 몰리게 하는 게 모범답안일 뿐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지방 나들이에서 이를 피부로 느꼈다.
충남 부여로 가는 여정에서 평택·천안·아산의 활력을 실감하면서다. 세종시가 아닌, 아산이 1인당 지역총생산 전국 1위 도시로 발돋움했다.
공공기관 이전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게 균형개발에 더 효과적임을 뜻하는 산 증거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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