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의 데자뷔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01 08:00

수정 2018.10.01 03:02

[역사 그리고 오늘] 이해찬-정동영-손학규-김병준의 '2007년' 주목
여권에서 대권 꿈꾸던 잠룡들, 11년 후 여야 대표로
'상처 주고 받던 사이' 협치 가능할까... 우려와 기대 공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청와대 집무실에서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정국 현안을 보고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청와대 집무실에서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정국 현안을 보고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7년 무렵이었다. 시험을 망쳐도, 여자친구에 차여도, 식당 음식이 맛이 없어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쓰였다. 지금으로 치면 ‘O2O(온·오프라인 연계형) 유행어’다.
지난해 제19대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 중에서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도 “길 가다가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 당시를 기억하게 했다.

처음엔 ‘반(反) 노무현 정서’를 풍자하는 말로 시작했다. ‘보수 언론은 무슨 일만 일어나면 노무현 탓을 한다’였다. 그러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실망한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폭넓게 사용하면서 전 국민 대부분이 쓰는 유행어가 됐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빅매치로 ‘미리 보는 대선’이라 불렸다. 그나마 유력 주자로 꼽혔던 고건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당 경선은 ‘패전 투수 결정전’에 가까웠다.

당시 여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한 직후의 새누리당과 비슷했다. 의원들의 탈당과 합종연횡이 반복될 뿐이었다.

과정은 이러했다. 대통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수렁에서 헤어나질 못하면서, 일부 의원들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한다. 이를 신호탄으로 여권 의원 상당수의 연쇄 탈당이 시작된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도 한나라당을 탈당해 여기에 합류했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 결성된다.

노무현의 색깔을 빼고 새로 태어난(?) 대통합민주신당은 창당 직후 대선후보 경선에 착수한다. 당 상황이 어지러웠음에도 불구하고 - 또는 어지러웠기 때문에 - 경선 후보는 난립했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던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했던 민주당에서 탈당한 추미애 전 의원과 한나라당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3위를 하던 손학규 전 지사도 출마했다.

지난 2007년 서울 상암동 DMS 제3스튜디오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서울-경기 정책토론회에서 정동영 당시 후보(왼쪽 첫번째), 손학규 후보(왼쪽 두번째), 이해찬 후보(왼쪽 네번째) 등 후보들이 토론회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서울 상암동 DMS 제3스튜디오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서울-경기 정책토론회에서 정동영 당시 후보(왼쪽 첫번째), 손학규 후보(왼쪽 두번째), 이해찬 후보(왼쪽 네번째) 등 후보들이 토론회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해찬-손학규-정동영의 11년 전 ‘악연(惡緣)’
패전 투수 결정전에도 유력 후보는 있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그리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빅3’를 형성했다. 컷오프를 진행하면서 5명의 후보가 추려졌고, 친노계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이 후보사퇴와 이해찬 후보 지지를 밝히면서 ‘빅3’ 간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패전 투수 결정전에도 세 후보 간 경쟁은 치열했다. 한 라디오 토론회에서의 설전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해찬 후보는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정동영 후보가 김대중 정권의 호남 편중 인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참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정동영 후보를 공격했다.

정동영 후보가 “이해찬 후보와 저는 서울대 재학 시절 동기로…”라며 무마하려고 하자, 이 후보는 “아, 친구 이야기 그만 좀 하세요”라며 성을 냈다. 실제로 둘은 서울대 72학번 동기이고, 나이도 이 후보가 1952년, 정 후보가 53년생으로 비슷하긴 하다.

손학규 후보와 다른 후보 사이에도 공방이 벌어졌다. 이해찬 후보는 “아직도 한나라당 후보의 말과 비슷하다. 공부 좀 더 하라”고 공격했고, 손학규 후보는 “그런 한나라당과 대연정하자고 국회 다녔냐”고 맞받아 쳤다. 이 후보가 “손 후보 공격했다간 또 나가실까 봐 못 하겠다”고 비아냥대자, 손 후보는 “정치에는 기본 예의란 게 있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후보도 “(손 후보의)‘김영삼 정부가 민주개혁 1기 정부’라는 인식에 놀랐다”고 공격하자, 손 후보는 “전두환, 노태우 씨 단죄한 정부가 민주개혁 정부가 아니면 뭐냐”고 맞섰다.

이때 경선은 네거티브 공방과 더불어 '선거인단 명부 박스떼기', '선거인단 카풀 차떼기' 의혹 등 진흙탕 싸움으로 점철됐고, 세 후보는 앙금만 쌓았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로는 정동영 전 장관이 선출됐다.

■이후에도 관계는 악화일로 “상처만 주고 받던 사이”
이후에도 세 사람의 관계는 악화일로(惡化一路)만 걸었다.

정동영 대선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선긋기'를 하려고 하자,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 의원은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정 대표가 동교동계가 중심이 됐던 민주당을 흡수통합하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 단일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비판했다. 선대위원장이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17대 대선에서 참패한 이후, 손학규 전 지사가 당을 이끌자 이해찬 전 총리는 탈당해버렸다. 이 전 총리는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당은 정체성도 없이 좌표를 잃은 정당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일갈했다.

2010년 민주당 대표와 수석최고위원으로 만난 손학규-정동영 두 사람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성을 주고 받으며 사사건건 대립하기도 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세 정치인을 두고 “오랜 기간 정치를 했지만, 서로 상처를 준 적은 많아도 이렇다하게 덕을 주고받을 계기는 없었다"고 전한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신임 대표가 지난8월27일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대표실을 예방해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신임 대표가 지난8월27일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대표실을 예방해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지키기’ 위해 대선 출마 고민했던 김병준

이 이야기에 숨은 주인공이 한 명 더 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지난해 출간된 ‘대통령 권력’에서, 그는 2007년 당시 본인이 대선 출마를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밖으로 나갔다. 실제로 그(강 회장)도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 나갔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만류하더라도 (대선에 출마)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이 책에 따르면, 2007년 초 강금원 회장이 김병준 전 정책실장에게 출마를 권했다고 한다. “영남 출신이자 노 대통령과 가까운 김 위원장이 대선에 나서는 것만으로 당시 패배가 확실시되던 여권의 대선 경쟁 흥행에 불을 지피는 것이 가능하고, 대선에 떨어져도 영남지역 세를 모아 당내 입지를 구축한다면 퇴임한 노 대통령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신당 창당이 거론되면서 우리의 생각은 길을 잃고 말았다”며 “대통령을 버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호남주도의 신당, 영남 지역의 지지를 모아 어쩌고 하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지켜줄 것을 기대했으나 그 또한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김병준 전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친노세력에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책에서 친노·친문(친문재인)계를 겨냥해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독점에서 그(노 대통령)를 구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돌아가신 분을 앞세워 이긴 세력이 뭘 제대로 할 수 있겠나”며 “무능함에 우왕좌왕, 그러다 돌아가신 분 욕이나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신임 대표(오른쪽)가 지난8월27일 국회 본청 민주평화당 대표실을 예방해 정동영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신임 대표(오른쪽)가 지난8월27일 국회 본청 민주평화당 대표실을 예방해 정동영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동상이몽(同床異夢)하던 네 사람, 이상동몽(異床同夢) 할까

11년 전, 같은 정치세력 안에서 대권을 꿈꿨던 네 사람이다. 그러나 11년 후, 네 사람은 곧 여야 유력정당의 대표로 만날 것이 유력해졌다.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의 정책실장이었던 김병준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됐고, 참여정부의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의 의장을 지낸 정동영은 민주평화당의 대표가 됐고, 참여정부 실세총리였던 이해찬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됐다. 통합민주당 등에서 대표를 했던 손학규는 오는 2일 바른미래당 대표 당선이 유력하다. (그리고 당시에는 대권에 관심도 없던 청와대 비서실장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다.)
하필이면 시기도 얄궂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기다. 80%를 넘나들던 대통령 지지율은 50%로 떨어지며 매주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11년 전 네 사람의 인연을 돌아보게 된다.
‘오랜 기간 정치를 했지만, 서로 상처를 준 적은 많아도 이렇다하게 덕을 주고받을 계기는 없었던’ 인연.

네 사람이 각각 당을 이끌게 되면 과연 협치(協治)가 잘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사안마다 여야의 대립은 더 커질 것”이라며 “협치가 이뤄지더라도 성향이 비슷한 민평당과 정의당 정도에 그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모두 20년 이상 정치를 하면서 정치 9단까지는 아니더라도 7~8단 경지에는 오른 분들"이라며 "'정치는 생물'인데 과거 일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허허 웃으며 국사를 함께 논의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 섞인 논평을 전하기도 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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