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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연극 '창문 밖으로 도망친 100세 노인'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20 16:37

수정 2018.08.20 16:37

5명의 배우가 60개 역할… 지루할 틈 없는 전개
[공연 리뷰]연극 '창문 밖으로 도망친 100세 노인'


아직 그때까지 살아보진 않았지만 큰 사고 없이 수명을 다한다면 수많은 이들이 곧 100세를 맞이하게 될 터다. 그 시점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남을까.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기억들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믿음으로 남을 것이다. 수많은 영웅담과 불꽃같은 로맨스의 기억, 부풀려진 추억들이 유일한 자산일 것이다. 기억은 가득한데 그때 내 주위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상상해본다.

수많은 타인의 선례에 비춰볼 때 결국엔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여기 그런 상황에 처한 주인공 '알란'이 있다.
요양원에서 맞이하는 100번째 생일이 오늘이다. 오후에 지역 언론사에서 100세를 맞이한 걸 취재하러 온다고 요양원장은 벌써부터 호들갑이다. 근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친구들도 없고 술 한잔 맘대로 마실 수 없는 무미건조한 요양원에서 맞이하는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 말이다. 그래서 그는 요양원 창문을 훌쩍 넘는다. 그의 이런 모험은 일생을 통틀어 계속되어온 것이었기에 100세에 떠나는 길이라 해서 두려울 것도 없다. 그런데 우연히 버스정류장 화장실에서 만난 무례한 갱단의 돈가방을 맡았다가 깜박하고 버스를 타버리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자신이 쫓기는 줄도 모른다.

이어 그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특이하다. 평생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고 말하는 일흔살의 좀도둑 율리우스와 함께 다니는 동안 경찰의 수배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란은 여유롭다. 그가 지나온 100년의 인생사가 지금보다 더 스펙터클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20세기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그의 인생사가 100세를 맞이한 지금 보름간의 도피 행각과 교차되며 연극 안에서 펼쳐진다.

요나스 요나손의 원작 소설과 2014년 만들어진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이 연극은 김태형 연출과 지이선 작가의 손에서 새로운 형태의 극으로 탄생했다.
주인공 알란이 100년을 살아오면서 만났던 인물 60여명을 5명의 배우가 번갈아가면서 소화해내는 모습을 '캐릭터 저글링'으로 표현했다. 5명의 배우가 모두 극 속에서 주인공이 아이였을 때와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을 맞이한 모습으로 각각 분한다.
마치 손오공의 분신술 같은 연기 변신이 실제를 그려낸 것인지 노인인 알란의 머릿속 환상을 그려낸 것인지 혼란스럽지만 속도감 있는 극 전개가 지루할 틈 없게 만든다. 공연은 오는 9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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