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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지식재산, 제값 주는 문화 안착되길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19 16:59

수정 2018.08.19 16:59

[차관칼럼]지식재산, 제값 주는 문화 안착되길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오늘날 전 세계 민법의 기본 바탕이 되는 라틴 법언(法諺)이다. 이 법언에서 의미하는 약속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2000년 미국 뉴욕주 법원은 개인 발명가 나델과 장난감 제조업체인 플레이-바이-플레이 간의 소송에서 나델 편에 섰다. 이 사건은 나델이 제조업체에 새로운 모형의 장난감 사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제조업체는 이듬해 나델이 제시한 모형과 유사한 제품을 판매했고, 이에 나델은 계약 위반으로 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명시적 계약이 없더라도 나델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보호돼야 하며, 나델의 아이디어 덕분에 제조업체는 상당한 개발비용을 절감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례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적 약속이 미국 사회에 하나의 경제질서로 잘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2012년 애플은 노텔의 통신기술 특허를 45억달러(약 5조40억원)에, 2014년 구글은 스마트 온도계 제조사인 신생벤처 네스트랩을 32억파운드(약 4조7500억원)에 인수했다. 만일 타인의 노력에 정당한 보상 없이 무임승차를 한다면 강력한 제재조치가 따른다. 최근 자율주행차 기술에 대한 영업비밀 및 특허침해로 피소된 우버는 구글에 2억4500만달러(약2700억원)를 지불하고서야 소송을 종결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제도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미국의 혁신가들은 시장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꽃피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이와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허청에는 거래 과정, 공모전 등에서 기술과 아이디어가 도용됐다는 민원이 심심치 않게 접수되고 있다. 특히 거래 성사나 유지를 위해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공했지만 정당한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 중소·벤처기업이 대부분이다.

'Ubi jus, ibi remedium(권리는 보호돼야 한다)'는 약속 위반으로 권리가 침해되면 권리자를 보호할 적절한 구제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의 또 다른 라틴 법언이다. 이 문구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던 약자들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끊임없이 되새김한다. 국가는 적절한 규범으로 국민의 권리가 보호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약자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거래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아이디어 탈취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 7월 18일부터는 사업제안 등 거래 과정에서 제공된 아이디어를 제공목적에 반해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가 명시적으로 금지된다. 또한 거래관계에서 약자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특허청에서 직접 조사와 시정권고도 한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고,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 필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지식재산 제도가 추구해야 할 정의이자, 혁신성장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개정안 시행이 우리나라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빼앗거나 베끼는 문화가 사라지고, '지식재산에 대한 제값 주는 문화'가 안착되는 반환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성윤모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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