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워라밸은 '근로환경의 질'에 달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7 17:24 수정 : 2018.08.07 17:24


어느 사회지도층 인사가 '휴일의 평일화, 야근의 주간화, 라면의 상식화, 가정의 초토화'가 미덕이라면서 직원들에게 강요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요즘 말로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2017년 기준 연간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1759시간) 중 최고의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불명예를 10년 넘게 견지해 온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근무환경에서는 삶의 질 향상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몇 년 전 선거 슬로건으로 나왔던 '저녁 있는 삶'에 열광한 것처럼 우리 국민들은 장시간 근로에 피로감을 꾸준히 호소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새 정부도 행복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 이하로 줄이는 것을 국정과제의 하나로 설정하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첫 단계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지난달 1일부터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 중이다. 경제사회적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토대가 마련된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확보된 저녁과 주말의 여유를 무엇으로 채울지 행복한 고민과 실천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머라밸(Money and Life Balance의 준말)'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어 돈 없는 저녁 있는 삶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비해온 일부 대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이 소득 감소 없이 직원들의 워라밸 상승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함께 추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일부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직원 추가고용에 따른 비용 상승 등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모든 기업에는 근로환경의 질 개선을 통한 노동생산성과 업무 몰입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OECD는 근로의 질이 소득, 근로시장 안정성, 근로환경의 질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매년 '근로환경의 질'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는 직업의 만족도가 아닌 근로자의 업무특성, 업무 수행의 물리적·사회적 조건, 직업 전망 등 근로환경의 질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측정 없이 개선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근로시간 단축에 이어 근로환경의 질 개선에 나서야 할 우리에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오는 11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제6차 OECD 세계포럼에서도 근로환경의 질 가이드라인이 주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뤄지고 관련 세미나도 개최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맞이할 새로운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정부는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 마련, 노동자들은 노동생산성 향상과 워라밸 실현, 기업은 근로환경의 질 개선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꾀할 수 있는 혜안을 이번 OECD 세계포럼을 통해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성욱 OECD세계포럼 준비기획단장 통계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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