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거리의 아이들과 25년째, 들꽃처럼 예쁘게 자라나 주더군요"

남건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6 17:09

수정 2018.07.26 18:48

[감동시리즈-우리함께]⑤ ‘들꽃청소년세상’ 이끄는  김현수·조순실 공동대표
개척교회 꾸리던 1994년 여름, 새벽에 예배당 가보니 8명의 아이들이 뒤엉켜있었어요
밥부터 먹이고 집에 돌려보냈더니 그때부터 아이들이 더 찾아왔어요
집에 보내도, 시설로 보내도 결국은 교회로 돌아오더군요..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어요
매주 수원역·신림역 인근서 활동가들이 청소년 만나 이야기 들어요
돌봄가정도, 교육시설도 늘어났지만 들꽃청소년세상 울타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아요
들꽃을 나가도 계속 연결돼 아이들의 고향이 되어주고 싶어요
25년째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조순실(왼쪽), 김현수 목사 부부가 '들꽃청소년세상' 서울사무소 앞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25년째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조순실(왼쪽), 김현수 목사 부부가 '들꽃청소년세상' 서울사무소 앞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형들을 만나서 안산국민학교에서 또 본드를 했다. 그런데 대훈이 형하고 하다가 어떤 아저씨한테 걸려서 나 혼자 도망왔다. 집에 돌아오니까 경민이 형하고 철민이 형하고 지훈이 형하고 성화 형하고 목사님하고 민준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나는 울었다.
울다보니까 엄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울었다. 그런데 더 울고 싶어서 나는 계속 울었다. 그래서 나는 세수를 하면서 계속 울다가 내 동생 민준이가 수건을 갖다줘서 닦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들꽃청소년세상 소식지 '품' 186호 6쪽)

이영환씨(가명)가 1995년 9월에 쓴 글이다. 당시 이씨는 조순실(61), 김현수(63) 목사 부부가 경기도 안산에서 함께 꾸리던 작은 개척교회에 살았다. 이씨는 동네에서 유명한 문제아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은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였지만 매일 거리로 출석했다. 잠도 거리서 잤다. 부부는 1994년 여름 그들과 처음 만났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한 거리 청소년들과의 인연이 25년째 이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청소년 지원단체 '들꽃청소년세상'은 그렇게 세상에 꽃을 피웠다. 지난 20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들꽃청소년세상 서울사무소에서 김현수, 조순실 대표를 만났다. 이날 최고기온은 35도. 햇빛만큼이나 부부의 미소는 쨍쨍했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던 부부는 한시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뜨겁고 생생한 그들의 삶을 들었다.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한 첫 만남

1994년 여름은 한국의 여름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이어졌다. 공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후끈했다. 새벽기도를 나선 부부는 교회 문을 열자마자 손으로 코를 가렸다. 악취가 진동했다. 불볕더위에 한편에 놓은 음식이 상했나 싶었다. 아니었다. 예배당 구석에 8명의 아이들이 뒤엉켜 있었다. 당시 부부는 교회문을 잠그지 않았다. 원체 작은 교회였다. 부부는 교회 건물 2층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밥부터 먹여야겠다 싶어 위층에서 음식을 날랐다. 수저가 그릇에 부딪쳐 나는 달그락 소리가 잦아들 때쯤 아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라고 했던가.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아이들의 스토리는 대부분 비슷했다. 김 대표는 "가정이 파괴된 경우가 많았다"고 운을 뗐다. 아버지가 실직했다. 매일 집에서 술을 먹었다. 술에 취하면 가족을 때렸다. 엄마가 나가고, 누나가 나가고, 아이도 나왔다. 집을 나온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서로의 가족이 됐다. 먹을거리도 같이 구하고, 잘 데도 함께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찾은 교회는 밤을 지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정은 딱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집에는 들어가야지'란 생각에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자꾸 돌아왔다. 어느 날은 교회가 난장판이었다. 커피가루가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구석에는 똥도 싸놨다. 안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교회 문을 잠갔다. 며칠 뒤 새벽기도가 끝나고 동네 산책을 하던 중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부부를 보자 반갑다고 웃었다. 다시 밥을 먹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도저히 집에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집에 가서 자야지'란 선입견이 깨졌다. 갈 데를 알아볼 때까지만 데리고 있기로 했다. 일주일이면 될 것 같았다. 남자아이들은 교회에서, 여자아이들은 집에서 재우면 될 터였다. 그날이 1994년 10월 9일. 들꽃청소년세상의 창립일이다.
사진=서동일 기자
사진=서동일 기자
■청소년 문제 해결주체는 청소년…어른 아니야

아이들의 가정 방문부터 했다. 시설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주소이전을 해야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주소이전이 가능한 아이들 다섯명을 시설에 보냈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도망나와 교회로 돌아왔다. 다시 시설로 보내도 또 교회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부부가 마음의 결정을 확실하게 내리기도 전에 아이들은 부부의 삶에 불쑥 들어와 싹을 틔웠다.

8명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8명이던 아이들이 열댓명으로 늘어났다. 나중엔 교회를 오가는 아이들의 전체 숫자가 50여명이나 됐다. 집을 나온 아이들은 서로 연결돼 있었다. 들락날락거리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동네에서 무언가 사라지면 주민들은 교회를 찾아왔다. '왜 저런 아이들을 끌어들여 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느냐'며 멱살을 잡았다.

김 대표는 "처음 몇개월 동안 참 힘들었다"며 "가장 힘든 게 약물과 폭력 문제였다"고 말했다. 당시엔 본드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덩치가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괴롭히며 구걸을 시키는 문제도 심각했다. 김 대표는 "약물 전문가, 청소년 전문 정신과 의사 등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해결책은 없었다"며 "주변으로부터 무모한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자신감이 줄어든 김 대표가 희망을 얻은 건 순간이었다. 어느 늦봄 오후 김 대표의 머릿속에 거리 청소년의 생태계가 그려졌다. 그들은 그들 세상의 주인이었다. 여태껏 아이들을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던 김 대표에겐 큰 변화였다. 그는 "청소년의 문제는 청소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물론 어른들이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지만, 결국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건 청소년 전문가가 아니라 청소년 본인"이라고 설명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행동에도 군더더기가 사라졌다.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연구에 청소년을 참여시켰다. 아이들을 훈계하고 보호할 대상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인식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뜻에 공감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줬다. 후원 회원들은 계속 늘어났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정도 많아졌다. 방향성이 뚜렷해지니 김 대표 마음에도 평화가 왔다. 그는 "예전엔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열을 삭히기 일쑤였다"며 "생각이 바뀐 뒤로는 아이들과 레슬링도 하고 닭싸움도 하면서 몸으로 부대끼니 마음이 풀렸다"고 회상했다.

■"들꽃이 아이들의 고향 됐으면"

들꽃청소년세상은 뭉게뭉게 커졌다. 안산의 작은 교회 한곳에서 시작한 돌봄가정은 아홉곳으로 늘었다. 교육을 위한 시설도 다섯곳이나 된다. 들꽃청소년세상은 탄자니아, 네팔, 몽골 등에서도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 대표는 들꽃청소년세상을 키우는 와중에 사회복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 대표는 "들꽃청소년세상은 필요에 의해 점점 커졌다"며 "생활이 아닌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그룹홈과 별도로 쉼터가 생겼고, 학교에서 배우길 어려워 하는 친구들을 위해 대안학교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몇 년 전부터는 버스 사업을 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매주 정해진 시간에 수원역과 신림역 인근에서 거리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밥도 주고 필요한 물품도 제공한다. 최근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대출 빚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다. 들꽃청소년세상은 무담보로 소액자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딧' 방식으로 아이들을 돕는다. 직업훈련도 시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2013년까지 직접 그룹홈을 꾸리던 부부는 이제는 둘만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조 대표는 "그동안 들꽃청소년세상이 많이 커졌다"며 "들꽃청소년세상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 전체를 위한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얼마 전 1994년 여름에 만난 초창기 친구들이 다 모였다"며 "어느덧 중년에 접어드는 그 아이들이 닭백숙을 우리에게 대접했다"고 미소지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들꽃에 있던 아이들이 들꽃을 나가도 계속 연결돼 있으면 좋겠다"며 "들꽃이 계속해서 아이들의 고향이 되고 집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thica@fnnews.com 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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