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훈식 칼럼] 최저임금 재심의, 건성에 그쳐선 안돼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6 16:56

수정 2018.07.26 16:56

[정훈식 칼럼] 최저임금 재심의, 건성에 그쳐선 안돼

정부와 소상공인이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놓고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3일 고용노동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이와 때를 맞춰 700만 소상공인(자영업자 포함)들도 '생존권 운동연대'를 출범시키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29일 대규모 총궐기 시위와 함께 불복종을 선언했다.

일단 공은 고용부로 넘어갔다. 고용부 장관이 재심의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1987년 최저임금제 도입 후 30년 동안 재심의로 이어진 적은 한번도 없다. 최저임금 적용 원년인 1988년 이후 작년까지 이의신청된 23건 모두 '이유 없다'로 끝났다. 이의신청과 재심의가 절차상의 요식행위라는 지적과 함께 이번에도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도 소상공인들은 집단행동으로 맞서며 재심의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건다. 이대로라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범죄자가 되거나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이 이토록 간절히 재심의,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하향조정을 원하는 것은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75%가 '지급불능'에 빠진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반영한다.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경총은 소상공인 입장을 담아 제출한 이의신청서에서 네 가지를 지적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산출 근거다. 이번 최저임금은 사용자위원과 일부 근로자위원의 불참 속에 다수인 공익위원이 만든 안이 채택됐다. 그런데 공익위원들은 소득분배 개선 기준을 그동안 중위임금으로 하다가 평균임금으로 바꿨다. 잣대가 틀렸으니 결과가 잘못돼 나오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원칙에도 없는 산입범위 확대 보전분이라는 명목으로 1.0%를 인상률에 반영했다. 이는 입법권 침해 소지가 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해서 불합리한 제도를 고쳐나가는 마당에 공익위원들이 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협상참여 배려분이라는 것도 뜬금없다. 더구나 이번 최저임금 결정은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 중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중 민주노총이 보이콧한 가운데 수적으로 우세인 공익위원안이 그대로 채택됐다. 그마저 공익위원안이라는 것이 두자릿수 인상률이라는 '각본'에 맞춰 처리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저임금 결정이 총체적 졸속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두고 강효상 의원(자유한국당)은 "무책임한 공약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와 고용부, 친정부 성향의 최저임금위가 손을 잡고 도장깨기(유명한 무술 도장을 찾아 강자들을 차례로 꺾는다는 의미)를 하듯 최저임금을 갱신한다"고 꼬집었다. 강 의원은 지난 25일 고용부와 최저임금위원회의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선진국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분석한 뒤 감당할 수 있는 액수를 최저임금으로 정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전후 사정을 보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재심의 절차를 제대로 밟는 게 당연하다. 핵심은 잘못 결정된 최저임금 수준이다.
'2020년 1만원'이라는 최저임금 과속 공약이 부른 졸속행정이니 이를 바로잡을 사람은 고용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자영업에 대해 '특단의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그 특단의 대책은 최저임금 재심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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