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불길 번지는 무역전쟁]수입쿼터에 저가공세까지… 보호무역 희생양 된 한국 철강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9 17:27

수정 2018.07.19 20:53

EU, 세이프가드 발동..美와 달리 '글로벌쿼터' 적용
국가간 수출경쟁 부추길듯, 유럽을 美 대체시장 삼았던 국내업체 전략수정 불가피
정부 긴급 대책회의 "양자·다자채널 적극 활용, 한국산 제외 입장 전달할것"
속탄다 19일 서울 가락동 한국철강협회에서 열린 유럽연합(EU)의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잠정조치 대응 민관대책회의에서 도한의 포스코 상무, 이민철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김경석 현대제철 상무(왼쪽부터) 등 철강업계 관계자들이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의 인사말을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연합뉴스
속탄다 19일 서울 가락동 한국철강협회에서 열린 유럽연합(EU)의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잠정조치 대응 민관대책회의에서 도한의 포스코 상무, 이민철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김경석 현대제철 상무(왼쪽부터) 등 철강업계 관계자들이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의 인사말을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연합뉴스

[불길 번지는 무역전쟁]수입쿼터에 저가공세까지… 보호무역 희생양 된 한국 철강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철강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철강 쿼터(배당량)를 2015~2017년 평균수출량(383만t)의 70%로 제한한 가운데 EU까지 관세장벽을 높임에 따라 연간 4조원가량인 EU시장 수출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EU는 이날부터 28개 철강제품 중 수입 증가가 없다고 판단한 5개를 제외한 23개 제품에 대해 지난 3년간의 평균 수입량만큼만 무관세를 적용키로 했다. 이를 초과하는 수입품에는 25%의 관세를 부과한다.
이번 조치는 최대 200일까지 효력을 발휘한다. 이에 정부와 철강업계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 모색에 나섰다. 철강업계는 최근 3년(2015~2017년) 평균 물량만큼은 EU 시장에 무관세로 수출(그 이상 수출물량은 관세 25% 부과)할 수 있다는 점에선 미국의 철강 쿼터보다는 영향이 덜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EU의 세이프가드 조치로 미국을 대체해 EU시장으로 철강 수출을 확대하려는 전략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글로벌쿼터, 국가간 경쟁 예상

EU의 이번 조치는 미국과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국가별로 수출물량을 배정했지만 EU는 글로벌쿼터제를 적용했다. 관세 없이 EU에 수출할 수 있는 총량만 정해 놓은 것이다. 세이프가드에 포함된 특정 제품에 대해 한 나라의 수출물량이 늘면 다른 나라가 수출할 수 있는 양은 줄어드는 형식이다. 이 때문에 국가 간 수출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

이번 세이프가드 적용 품목의 총 쿼터는 1513만t이다. 품목에 따라 5500t에서 많게는 426만9000t이 배정됐다. EU의 이런 조치는 결국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철강제품에 대해 관세장벽을 세우자 주요 수출국들의 물량이 EU로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가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의 배경이다.

■철강업계 전략수정 불가피

국내 철강사 중 EU에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는 고로(철광석을 녹이는 용광로)사인 포스코, 현대제철과 전기로 업체인 동국제강 등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철강제품은 일본에 412만t, 중국 411만t, 미국 354만t, EU에는 330만t이 수출됐다. 주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열연, 냉연, 후판, 도금강판 등이 주요품목으로, 모두 이번 조치에 포함돼 있다. 일단 철강업계는 기존에 EU에 수출하던 물량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데 석달가량 걸리기 때문에 철강 수출 계약은 통상 3개월 전에 끝난다"며 "철강은 여신거래 비중이 높아 수출국 간 경쟁이 벌어지더라도 공급사를 갑자기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좁아지면서 대체수요처를 찾고 있었던 철강사들은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으로 들어가는 국내산 철강제품의 물량이 비슷한 수준"이라며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자 수출전략의 변화 차원에서 유럽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을 대안으로 찾았는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될까

철강업계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한국시장 보호다. 미국, EU에 이어 다른 나라들로 관세장벽이 확산되면 피해가 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국내시장 보호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대형철강사 관계자는 "이 틈을 타고 한국으로 수출물량을 늘리는 경쟁국들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국도 세계 철강사들에는 주요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국내시장 보호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철강수요산업의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중국산 저가제품 유입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가 보호무역주의 파고에 더욱 휘청거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수요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수출마저 줄어들 경우 국내 철강업이 적지않은 내상을 입게 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철강협회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문승욱 산업부 산업혁신성장실장은 "정부와 업계는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최종결정 전까지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응하겠다.
정부는 EU 세이프가드 공청회(9월 12~14일) 참석을 비롯해 양자·다자채널 등을 활용해 (한국산을 제외해달라는) 우리 입장을 적극 개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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