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근로시간 단축 속도조절 필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9 17:24 수정 : 2018.07.09 21:17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놓고 산업계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과 '정서적 여유를 확보'해 일·가정 양립이 사실상 어려운 우리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이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일단 문재인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니 기업들은 체질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도 도입의 속도조절과 보완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실 근로시간 단축의 정량화가 비교적 용이한 제조업계보다는 작가, 출판계, 경영기획, 연극·영화, 무용, 공연예술,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분야를 망라한 '창작형 근로자'가 더 문제가 될 듯하다.

아이디어 발굴이나 사업 기획, 창작 등은 어느 특정한 시간대에 갑자기 떠오르거나 샘솟는 게 아닌 데다 근로자 개인별로 편차가 커 근로시간 단축의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고도의 창작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창의적 근로자일수록 근로시간 단축제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여서 업계별 특성을 감안한 보완대책이 시급하다.

이미 상당수 기업 등에선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신청해도 거의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오후 5시를 넘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진다는 예고에 이어 특정 시간이 지나면 강제적으로 꺼지게 된다"며 "하지만 이후 연장근무 신청이 들어와도 연장근로 허용요건이 엄격한 데다 솔직히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사실상 연장근무 신청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외국과의 시차 때문에 불가피하게 특정 시간대에 업무하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연장근무를 못하게 되면 자연히 '자의반 타의반'의 재택근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같은 '울며 겨자 먹기식' 재택근무는 당연히 연장근로시간에 포함이 안 되고, 수당도 받지 못한다.

회사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집으로 가져와 하려면 개인 노트북이나 PC도 사비로 구입해야할 판이다. 결국 직장에서 근로시간은 줄어들지만 집으로 일감을 가져와 일해야 하는 재택근무 시간은 오히려 늘고, 수당마저 줄어드는 이중고가 우려된다. 줄어드는 소득에 저녁이 있는 삶이나 일상의 여유는 오히려 사치일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방향은 옳다. 다만 제도의 연착륙을 위한 향후 보완대책 수립과 제도의 속도조절은 필요하다. 무조건 기업을 편들자는 것도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의 이해주체인 근로자와 기업, 근로시간 단축제 시행으로 파생되는 '전후방효과'까지 감안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찾자는 얘기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유연근로시간 활성화 등을 모색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조선, 철강 등 일부 업종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인가 연장근로의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근로시간 연장을 지나치게 엄격히 제한한다면 또 다른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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