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돌관작업과 주52시간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7 17:18 수정 : 2018.06.27 17:18

밤낮 없이 24시간 내내 작업 공기단축으로 경쟁력 높여
'정주영 정신'만은 이어가길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인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에는 높이 10m 남짓 되는 기념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세계 고속도로 건설 역사상 최단기간에 완공된 걸 기념한 것이다.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딱 중간(총 연장 428㎞ 중 부산기점 213㎞ 지점)이면서 '구름도 쉬어가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았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3월 1일 첫삽을 떠서 1970년 6월 27일 완공됐다.
단 28개월 만이다. 요즘처럼 자재나 기계가 변변치 않은데도 세계적으로 같은 규모의 고속도로를 이렇게 빨리 지은 곳은 없다.

경부고속도로에서도 옥천군과 영동군을 연결하는 옥천터널(당시 당재터널)은 최대 난공사 구간이었다. 상·하행 각 600m 남짓인 이 구간은 협곡이 많고 지반이 약해서 낙반사고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다. 전문가들도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 이 공사를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단 25일 만에 마치며 기념비적인 고속도로 건설역사를 썼다.

공사기간 단축의 비결은 바로 '돌관(突貫) 작업'이다. 돌관작업은 집중해야 할 공정에 전 인력을 투입해서 밤낮없이 24시간을 작업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돌관작업의 효시는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다. 그는 일반시멘트보다 20배 이상 빨리 굳는 조강시멘트를 사용하고, 군인까지 동원하며 철야로 작업해 경부고속도로 개통 예정일보다 이틀 빠른 1970년 7월 5일 준공했다. 돌관작업은 조선소를 짓는 데도, 배를 만드는 데도 동원되며 대한민국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

돌관작업 노하우는 밖으로는 막대한 오일달러를 등에 업은 중동 건설시장에서 특수를 누리며 '건설한류'를 일으켰다. 10여년 전 일선 기자 시절 모 건설회사가 시공하는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의 한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을 찾았을 때다. 이 현장은 공사 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현장소장은 이 거대한 공사를 따낸 배경으로 품질이나 가격경쟁력보다는 공사기간을 꼽았다. 영국이나 독일 등의 경쟁업체에 비해 공사기간을 20%가량 줄여서 입찰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중동을 비롯한 해외 건설시장에서 한국 건설의 최대 강점은 가격경쟁력과 함께 공기단축 능력이었다. 해외 건설현장, 특히 중동국가들은 발전소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은 목이 찰 정도로 필요할 때서야 발주하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이들은 시공사를 선정할 때 공사기간을 제일로 친다. 그게 중동 건설시장을 텃밭으로 일군 동력이 됐다. 중동 건설특수를 누린 1970∼1980년대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에 '시간이 곧 공사 수주요, 오일달러 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 정신은 속도경영으로 발전하며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돌관작업은 요즘에도 공사기간이나 제품 납품기한 맞춤용으로 산업 곳곳에서 활용된다. 이런 쓰임새 많은 돌관작업이 내달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설 자리를 잃는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놀 것 다 놀면 언제 선진국 따라잡나"라는 정 명예회장의 명언이 옛날 얘기가 됐다. 헝그리 정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밤샘공사를 마다 않던 시절이 가고, 저녁 있는 삶이 먼저인 세상이 왔다. 그렇더라도 반세기에 걸쳐 쌓은 소중한 자산이요, 세계 어느 국가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만의 소중한 지식재산이다. 그 값진 정신이 속도경영을 넘어 기업가 정신으로 살아남아 혁신성장으로 꽃피웠으면 좋겠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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