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혁신이 답이다-디지털이 바꾼 일상] 늘어나는 '무인지대'.. 기계에 일자리 빼앗긴 사람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0 16:53

수정 2018.06.20 19:47

저렴한 비용·편리함에서 사람 경쟁력 갈수록 밀려.. 생계보호 위한 논의 시급
서울 사당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이 아파트에선 지난 4월 무인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경비원 27명 중 17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사진=김규태 기자
서울 사당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이 아파트에선 지난 4월 무인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경비원 27명 중 17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사진=김규태 기자

서울 사당동 한 아파트 단지에 요란한 소음과 함께 아파트 경비실 벽을 허물고 전기설비를 새롭게 하는 등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아파트 12개 경비실에는 이달 중으로 자동개폐문과 폐쇄회로TV(CCTV)가 설치된다.
기계가 경비업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실 무인화를 추진하는 데 15억원을 사용했다. 아파트 관계자는 "매달 7000만원 하던 경비 운용비를 2000만원대로 줄이게 됐다"며 "무인화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며칠 전 "그분들이 자동문·CCTV로 사라지면, 주민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클까요"라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한 주민이 붙였다.

무인화 도입 전 경비원들과의 상생을 외치는 입주민의 호소였다. 경비실 무인화로 인해 25년 된 낡은 경비실과 함께 27명의 경비원 중 17명도 사라지게 됐다. "해고된 것도 모자라 남아 있는 경비들은 1개 동에서 이제는 4개 동까지 맡아야 할 처지"라며 씁쓸한 표정의 경비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무인시스템과의 경쟁에서 밀려 일자리를 잃은 경비원의 사례다. 식당, 카페뿐만 아니라 PC방, 주유소, 경비까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가 왔다. 비용절감이라는 효과에 무인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기 힘든 취업 한파와 맞물려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일할 자격마저 잃는 '인간 실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싼 비용과 편리함…"대면 주문 어색해"

무인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과 편리함이다. 종업원들 인건비가 부담스러운 일부 골목상권에서는 이미 기계가 아르바이트 학생을 대신하고 있다. 서울 제기동의 한 PC방 점주는 "무인결제기가 결제를 맡아주면서 직원들은 음식을 판매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알바 수는 예전이랑 똑같은데 음식까지 팔게 되면서 수익이 늘어난 상황"이라고 했다.

알바 5명을 고용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모 편의점주 한모씨(47·여)는 "남편과 새벽부터 일하고 있지만 본사에 매출 절반 가까이를 지급하고, 알바 월급을 주고나면 둘이 200만원을 가져가기도 버겁다"고 했다. 그는 "특히 알바들이 자주 그만두고 있어 걱정"이라며 알바 1명만 두고 무인 편의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자영업자들뿐만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대면 주문이 낯선 소비자들도 기계를 선호한다. 이모씨(28·여)는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주문할 때 괜히 어색하거나 메뉴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는데 기계는 화면을 보고 직접 선택하면 돼 자율성이 크다"고 전했다.

■저임금 근로자에 인간 실격 현상 '확산'

한편 인간 실격 현상이 대부분 단순 노무직 혹은 저임금 근로자의 일터에서 벌어진다는 점은 우려할 부분이다. LG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인공지능(AI)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1136만 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월소득 100만∼300만원 구간에 63%가 집중됐다.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종의 경우 인공지능 대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김건우 LG연구원 선임연구원은 "AI로 자동화가 빨라지면 실업, 양극화 문제가 부각돼 사회적 비용이 확대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무인화가 확산되면서 인간과 기계의 '상생'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용 혹은 편리함 등 경제논리와는 별개로 인간과 노동, 공동체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세웅 광주비정규직지원센터 대외협력국장은 "무인시스템의 비용 논리 앞에서 소통, 공동체 등 다른 가치들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며 "또 실제 무인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 주민 박모씨(48)는 "아파트에 살면서 삭막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경비아저씨들은 주민들을 이어주는 연결통로였다"며 "관리비 몇 푼 아끼자고 경비원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건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광화문의 패스트푸드점 직원 이모씨(31)는 "무인 계산기계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젊은 세대는 편할 수 있겠지만 어른들 중에는 사용방법을 몰라 두리번거리다 다시 나가는 경우가 잦다"며 "무인화 도입을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우려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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