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엘리엇과 ISS, 누가 더 셀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8 16:58

수정 2018.06.18 16:58

의결권 자문사가 주총 좌우.. 美 대기업 임원들도 쩔쩔 매
절대선처럼 여길 필요 없어
[곽인찬 칼럼] 엘리엇과 ISS, 누가 더 셀까

아래 빈칸에 뭐가 들어가면 좋을까. "중요한 안건이 있으면 미국 대기업의 고위 임원들이 ○○○ 본부가 있는 메릴랜드주 록빌에 무릎을 꿇고 찾아와 ○○○ 매니저들을 설득하는 일이 벌어진다." 얼마나 힘이 세길래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대기업 임원들이 쩔쩔맬까.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은 아닐 테고. 정답은 ISS, 원래 이름은 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우리말로 풀면 '기관투자가서비스'다. 위 글은 신장섭 교수(싱가포르국립대)가 쓴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에서 인용했다.

ISS는 세계 1위의 의결권 자문회사다. 기관투자가들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방향타 역할을 한다. 그 영향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선임연구위원의 말을 빌려보자.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인 블랙록이 주총에서 찬성한 의안 중 87.9%가 ISS가 찬성 추천을 한 것이고, 반대 의안 중 69.2%가 ISS가 반대한 의안이다."('국내 의결권 자문회사의 신뢰성 제고방안' 보고서). 다른 대형 기관투자가인 뱅가드는 어떨까. 찬성 의안의 88%, 반대 의안의 80%가 ISS 추천을 따랐다.

ISS는 이제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다. 대기업이 합병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마다 주주들은 ISS를 쳐다본다. ISS는 3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다. 합병안은 주총에서 통과됐지만 삼성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주도했지만 분명 ISS의 반대도 한몫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기관투자자가 아닌 의결권 자문회사가 기업지배구조를 좌우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의결권 자문사를 아예 '괴물'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주요 기업의 주총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참석하고, 투표권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전대미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흔히 하는 말로 '어벤저스급'이다.

이런 ISS에 문제는 없을까. 있다. 지금 ISS는 115개 나라에서 1900개의 기관투자가를 관리하고 4만2000건의 주총 안건을 분석한다. 이 일을 직원 1100명이 한다. 누가 봐도 벅차다. 이들이 내놓는 자료를 과연 의심 없이 믿어도 될까. 이해상충 문제도 있다. 방어하는 기업과 공격하는 헤지펀드가 동시에 ISS와 컨설팅 계약을 맺는 경우다. 이때 ISS는 누구 손을 들어줄까. 컨설팅을 외면하면? ISS도 외면한다.

의결권 자문사의 순기능을 죄다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기업들은 주주, 곧 회사의 주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ISS는 이런 잘못된 관행에 경고장을 날린다.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의 60%가 ISS 차지다. 30여년간 갈고 닦은 노하우도 상당하다. 시장의 신뢰는 거저 오지 않는다.

다만 ISS의 판단을 절대선처럼 떠받들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ISS도 기업이다. 기업은 장사를 해서 먹고산다.
더구나 ISS는 미국 사모펀드 젠스타캐피털이 소유하고 있다. 행동주의펀드에 유리한 기업지배구조다.
ISS는 글로벌 기업 거버넌스를 쥐고 흔드는 절대강자이지만 정작 제 지배구조는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격이라고나 할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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