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한 대법관 등 대법관 13명은 15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이와 관련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마치 재판거래 의혹이 있는 것처럼 사태를 확산시킨 김 대법원장의 태도를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관들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의 재판부와는 엄격히 분리돼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재판사무에 원천적으로 관여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대법원 재판은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이 각자의 의견을 표시해 하는 것이고,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인 대법원장 역시 재판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독립해 대등한 지위에서 합의에 참여하는 대법원 재판에서는 그 누구도 특정 사건에 관해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판결이 선고되도록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법관들은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당해 사건들에 관여했던 대법관들을 포함해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해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고,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해 참담함을 느끼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와 같은 형태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의구심을 해소하고 법원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스스로 특별조사단에 위임을 한 대법원장이 조사단 결과를 사실상 부정하고 일부 여론에 휘둘려서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법리적 판단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사법부 수장으로서 태도는 분명 아니다”라며 “어정쩡한 대법원장의 태도가 유례없이 극심한 사법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 여론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다른 법조인은 “판사 1명도 아닌 합의부나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에 윗선이 개입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 시스템상 불가능하다”며 “이를 잘 아는 김 대법원장이 여론에 휘둘려서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식의 정치인 같은 행보를 보인 게 이번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대법관들조차도 대법원장을 신뢰하지 않는데 어느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겠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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