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바이오 특수성 회계에 적용해야 차세대먹거리 키운다"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3 17:22

수정 2018.06.13 22:51

바이오 기업 R&D 비용처리 논란
R&D비용 자산화 관련 국내 명확한 회계기준 없이 기업 자율에 맡겨 논란 지속
분식회계 논란 불거지자 바이오기업들 상장 지연.. 사후처벌 위주 감리도 문제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바이오 특수성 회계에 적용해야 차세대먹거리 키운다"

차바이오텍 관리종목 지정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차세대 먹거리인 제약.바이오산업은 물론 기업공개(IPO) 시장마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회계업계에서는 바이오산업 특성에 맞는 명확한 회계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사후처벌 위주의 회계감리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수천억원을 쌓아둔 대기업만 신약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장심사 줄줄이 제동

바이오업계 회계 논란의 시작은 올해 초 도이치뱅크의 보고서였다. 셀트리온의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해 자산처리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3월에는 차바이오텍이 R&D 비용의 지나친 자산화를 이유로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의견을 받았다. 자산이 비용으로 바뀌자 차바이오텍은 적자로 돌아섰고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바이오기업 10곳에 대한 특별감리에 착수했다. 영업이익을 늘리려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한 사례가 있는지 살피겠다는 의도다. 일부 기업은 회계 처리를 부랴부랴 변경했다. 5월에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이 불거졌다.

이런 여파로 기업의 상장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13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코스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롯데정보통신, 티웨이항공이 최근 회계감리를 받으면서 상장 심사에 제동이 걸렸다. 올해 코스피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한 기업 가운데 심사승인을 받은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진행 중인 30곳 가운데 절반인 15곳은 감리를 받고 있다. 감리 결과에 따라 상장 일정이 늦어지는 기업이 속출할 전망이다.

■바이오산업 특수성 감안해야

바이오업계는 "금융당국이 제조업 마인드로 바이오산업을 규제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신약 개발은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본과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리지만 성공확률은 지극히 낮다. 이 같은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만 신약개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R&D 비용의 과도한 자산화로 투자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최근 한국바이오협회 설문조사 결과 바이오기업들은 'R&D 비용의 자산화에 명확한 회계처리 기준이 필요하다'는데 84%가 공감을 나타냈다.

깐깐한 회계 규제가 바이오산업을 위축시킬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 제약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1조1000억달러다. 단일시장으로는 최대다. 국내 의약품시장 규모는 글로벌 시장의 1.7%에 불과하다. 성장여력이 크다는 얘기다.

바뀌는 의료환경도 바이오기업 회계에 반영돼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치료제가 없는 말기 환자들도 실험 중인 약물치료를 시도할 수 있도록 한 '시도할 권리 법안'(Right to Try)에 서명했다. 한국도 이달부터 말기환자에 한해 특정 질환의 치료제로 허가받지 않은 의약품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프라벨 처방을 허용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바이오 산업의 회계처리는 일률적인 기준보다는 산업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후처벌 위주 감리시스템 바꿔야

회계업계는 "사후처벌 위주의 회계감리 시스템을 바꾸고, 바이오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한 R&D 가치평가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K-IFRS)에는 R&D 비용 자산화에 대해 '기술적 실현 가능성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한다'고 규정돼 있다. R&D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는 뜻이다. 통상 임상3상 진입은 상업화가 임박한 것으로 인식된다. 상업화 전이라도 기술을 수출하면 매출이 발생한다.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도 개발과정에서 자산으로 인식 가능한 경우는 많다. 임상시험 단계로 대변되는 R&D 과정 중 어느 선까지 자산으로 인식해야 할지, 임상시험이 없는 다른 산업과 형평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합의가 필요하다.

금감원이 바이오기업에 대해 감리에 착수한 것을 두고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로펌 회계담당자는 "민감하거나 애매한 사안의 회계처리를 금감원이나 회계기준원에 문의하면 답변이 너무 늦게 나오는게 문제"라며 사후처벌 위주의 감리시스템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교수 자문과 협의 절차때문에 늦어지는 것"이라며 "민원 답변 기간을 최대한 줄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한국공인회계사회 간담회에서 "사후처벌 위주의 감리시스템을 바꾸려 재무제표 심사 제도를 도입하겠다. 회계기준 위반여부를 판단할 때 민간전문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겠다"고 말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금감원이 감리에 착수하기 전 공청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모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