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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레저]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다..중세를 간직한 도시, 베라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7 16:56

수정 2018.06.07 22:05

발칸반도위 '또 하나의 유럽' 알바니아 여행
'1000개의 창문'으로 유명한 도시 베라트엔 오스만 양식 그대로 살아있어
18세기 교역도시 티라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성장… 해안도시 두러스 가면 로마시대 원형극장이 눈앞에
[yes+ 레저]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다..중세를 간직한 도시, 베라트

【 티라나(알바니아)=조용철 기자】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코소보,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알바니아. 비교적 동서 구간은 짧고 남북간 길이가 340㎞에 이르는 길쭉한 나라로 얼마 되지 않는 평야를 제외하면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다.

국토의 77%가 산악 또는 구릉지역인 탓에 농사보다는 임업과 목축업 등이 발달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 이상으로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대다수는 산자락 조그만 땅에 농사를 짓거나 양을 키우며 살아간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부에 있는 스칸데르베그 광장과 역사박물관 사진=조용철 기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부에 있는 스칸데르베그 광장과 역사박물관 사진=조용철 기자


가게나 길거리에서 여행객을 향해 미소짓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아마도 마피아가 득실댄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실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알바니아는 프랑스처럼 고급스런 휴양지나 이탈리아처럼 높은 첨탑을 보유한 유명한 성당도 딱히 없다. 유럽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수천년간 발칸반도 열강들에게 시달렸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옛 소련, 중국 등과 교류하면서 폐쇄적인 정책을 이어갔지만 1990년대 초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등 변화를 겪은 뒤 현재 개방적인 국가로 바뀌고 있다. 여전히 도시 곳곳에 40여년간 지속된 최악의 사회주의 독재정권의 흔적이 남아있다. 발칸반도 내의 '또 하나의 유럽'으로 꼽히는 알바니아는 아픔을 뒤로 한 채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베라트성 안에 거주하는 현지 주민 사진=조용철 기자
베라트성 안에 거주하는 현지 주민 사진=조용철 기자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 베라트

수도 티라나에서 남쪽으로 120㎞가량 가다보면 세만강이 나온다. 세만강 주변으로 조용하고 고풍스런 마을 베라트와 만난다. 인구가 수만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세만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산 밑으로 계단식 가옥들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끌벅적한 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을 바라보고 있으면 옛날엔 번성했던 도시였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베라트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의상, 전통 그리고 전망이 합쳐지면서 훌륭한 조합을 이룬다. 이른바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 유명한 베라트는 오스만 시대의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산 밑으로 오래된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강을 향해 있는 네모난 창문들이 많다. 다리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흰 집들의 창문이 모두 강쪽으로 향하고 있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치 창문들이 사람 눈처럼 강 아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베라트는 고대 성채와 모스크, 성당 등 옛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박물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특히 베라트 성에 있는 오누프리 박물관에는 걸작으로 꼽히는 중세의 도상(圖像)이 보관돼 있다. 성채 안에는 독특하게도 오늘날까지 주민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베라트성 내 오누프리 박물관 사진=조용철 기자
베라트성 내 오누프리 박물관 사진=조용철 기자


■알바니아 정치·경제의 중심지, 티라나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는 1614년 슐레이만 파샤가 이 지역에 인구집중을 위해 사원과 대중 목욕탕 등의 기반시설을 갖추면서 도시로 건설됐다. 18세기 티라나는 실크·면직물·가죽·도자기·은그릇 등으로 유명한 교역도시로 발전했다. 첫 발칸전쟁이 발생한 1912년 일시적으로 세르비아 군대에 점령당했으며, 1930~1944년에 티라나 시민들은 나치와 파시스트에 대항해 싸웠다고 한다. 오늘날 티라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스칸데르베그 광장을 찾았다. 티라나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티라나 관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역사박물관 앞이다. 역사박물관 정면의 민중항쟁 그림이 유명하다. 1981년 문을 연 역사박물관은 고대관, 중세관, 르네상스관, 독립관, 이콘관, 독재로부터 자유화의 관, 공산주의 테러관, 테레사 수녀관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의 규모가 엄청나고 시내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알바니아를 찾은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둘러봐야 할 곳이다. 광장 정면에는 15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알바니아를 최초로 독립시킨 국민적 영웅 스칸데르베그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스칸데르베그 광장을 지나서 만난 시계탑은 지난 1822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광장 동쪽에는 무노하관이 있다. 1960년 러시아에 의해 건설된 이 문화관에선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두러스 해변공원 사진=조용철 기자
두러스 해변공원 사진=조용철 기자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 유명한 베라트 사진=조용철 기자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 유명한 베라트 사진=조용철 기자


■3000년의 역사를 품은 두러스

알바니아는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를 따라 약 450㎞에 달하는 해안을 가지고 있다. 티라나에서 서쪽으로 불과 39㎞ 가면 알바니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두러스와 만난다. 아드리아해는 물이 얕고 모래가 많아 가족 휴가지로 적합하다고 한다. 아드리아해와 접해있는 두러스의 해변은 알바니아에서 가장 크고 자주 이용하는 해변이다. 두러스 해변은 길이가 6㎞에 이르고 상당히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서해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그리 많지 않아 가족과 아이들이 매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두러스에는 3개의 주요 해변이 있다. 두러스 북쪽에 있는 쿠리야 해변은 다른 2개의 해변에 비해 더 깊다. 두러스 남쪽에는 나머지 두 개의 다른 해변이 있다.

두러스는 거의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알바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그만큼 고대 고고학 유적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두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관광명소는 발칸반도에서 두번째로 큰 로마시대 원형극장이다.
비록 허물어지고 제대로 복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 만큼은 엄청나다.

yc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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