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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북한과 미국의 게임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28 14:15

수정 2018.05.28 15:50


자료=대신증권, 북미 정상회담 취소 당시 금융시장 가격변수 움직임
자료=대신증권, 북미 정상회담 취소 당시 금융시장 가격변수 움직임


2018년 5월 24일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최근 북한이 미국에게 보여준 분노와 적대 발언을 고려할 때 6월 12일에 북미정상회담 적절치 않다."

25일 아침.

북한 김계관 외무상:

"미국과 아무 때나 어떤 식으로든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

25일 저녁.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북한의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는 좋은 뉴스를 전달 받았으며 북미정상회담은 예정대로 개최될 수 있다. "

2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으로 판문점 판문각에서 비공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27일.

2차 남북정상회담 내용 공개.

문재인 대통령: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 등을 논의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행과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6월1일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연다.
다음달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해 종전선언까지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 추진 논의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양국 실무진들이 회담 준비에 착수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현재 북미 실무진들 간 회담이 판문점에서 진행 중이다"

■ 한국발 안전자산선호는 퇴조했으나..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등 세 나라 최고 권력자들이 지난 주말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주 목요일 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언 이후 남북미의 연락 채널들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런 뒤 다시 분위기는 반전됐다.

짧은 기간 불확실성이 증폭됐다가 급속히 사그라든 형국이 됐다. 트럼프는 '회담 취소' 초식을 구사하면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전략을 취했다.

이제 다시 싱가포르 회담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동시에 트럼프가 다시금 판을 뒤집는 식으로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란 인식도 제법 강화됐다.

다이나믹한 협상가 스타일의 트럼프 역시 동일 사안에 대해 충격요법을 여러 번 썼을 때 효과가 둔화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란 평가도 엿보인다.

금융시장에선 안전자산선호 퇴조, 혹은 위험자산 선호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갈 것이란 예상 등이 나온다. 다만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한반도 이슈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가운데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재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면서 "안전자산선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북미 이슈의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유로존의 정치 불안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 상태"라며 "유럽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쪽에선 2012년의 남유럽 사태처럼 불안감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 금융권에선 24일 밤 미국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언급했을 때 이를 잘 믿지 않았다.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이 이슈로 주가가 밀리면 저가 매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다.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후 다음날인 25일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3340억원의 주식 순매수를 기록했다. 당시 개인투자자들이 481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저가매수의 기회로 활용했다. 기관투자자 가운데 연기금은 1170억원을 순매수했다.

A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국내 기관이나 외국인 모두 북미정상회담이 이대로 취소될 수 없다고 보고 접근 한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들이 금요일 대거 순매도했지만 외인과 국내 연기금은 매수로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미회담이 계속 삐걱거릴 수 있지만 남과 북, 미국 모두 이대로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이 재료는 이제 주식시장에 식상한 느낌마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경협주들이 급등락했지만 전체 지수 등락은 제한적이며, 시장 전체적으로 볼 때엔 특별한 모멘텀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주말 정치변수가 다이나믹한 반전을 보인 뒤 이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건설 등 남북경협 관련 주식은 장중 30% 가까이 뛰면서 상한가 근처로 올라가는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최근 경협 관련 테마주 등의 변동성을 제외하면 전체 시장 등락은 제한적이다.

■ 북한과 보호무역, 트럼프가 버릴 수 없는 카드..변덕은 주식시장에 부담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 승리 등을 위해 북한과 보호무역 카드가 필요해 보인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풀지 못했던 북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역사적 위상도 올라갈 수 있다. 언제나 미국과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 입장에서 북한은 놓아버리기 어려운 매력적인 카드다.

앞으로도 트럼프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을 즐길 듯하다.

대신증권의 이경민 연구원은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자극했다. 주식시장과 국제유가는 하락한 반면 금, 채권가격은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트럼프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하다"면서 "최근 트럼프가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25%) 방안을 거론하자 강세를 보여왔던 유럽, 일본 주식시장이 흔들렸다. 지난주 유럽 주식은 9주만에 하락 반전하고 일본주식도 2% 이상 급락했다"고 언급했다.

24일 밤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에도 불구하고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이란 큰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인식은 강했다. 실제로 '예상보다 빨리' 북미정상회담 이슈는 원래 궤도로 복귀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트럼프의 의도된 변덕 등에 따른 금융 변동성은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이나 미국과 관련 재료들이 많이 노출된 상황에 있고 남북,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큰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구두 발언이 주식시장에 악재가 될 소지가 더 클 수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경민 연구원은 "향후 북한발 훈풍에 대한 주식시장 기대는 지금까지와 달리 약해질 수 있다"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글로벌 펀더멘털 동력 둔화와 트럼프의 금융시장 영향력 확대가 맞물리며 코스피 하락 압력은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B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매니저는 "최근 세계경기 둔화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경기에 민감한 수출주 등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북한 이슈는 지난주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는데, 계속해서 트럼프나 김정은이 변덕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은 주식시장에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할 요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트럼프가 미중 무역 갈등을 일단락 짓는 듯하더니 자동차 문제를 들고 나와 보호무역 강화의지를 밝혔다"면서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트럼프는 보호무역 역시 버릴 수 없는 카드"라고 진단했다.

그는 따라서 "보호무역과 북한 문제를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 이슈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력은 제한됐지만,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는 한 예기치 못한 변동성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트럼프 '주도권' 쥐었다는 평가 많아..경협주는 기대감 반영 정도 감안해서 접근해야

금융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번복 과정을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보다 더 좋은 패를 들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투 페어 정도는 깔고 가는 상황이며 풀 하우스를 노릴 수 있는 유리한 패"라면서 "반면 북한은 상대적으로 더 쫓기고 있다. 시쳇말로 뻥카가 특기였던 북한의 전술이 트럼프에게 잘 안 먹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게임장의 두 딜러가 과도한 베팅이나 사술을 쓰지 않도록 참관하는 심판이나 감독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회담의 주도권이 김정은 위원장보다는 트럼프 대통령 쪽에 있다는 진단은 많다. 중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양쪽을 조율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미국이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외교협상에서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통해 상대방에게 양보를 얻어내곤 했다. 하지만 트럼프대통령은 더 강하게 받아 치면서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런데 지금부터 게임이 본격화되는 측면도 있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이견과 갈등은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즉 게임의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양상은 복잡해진다.

주말에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 체제보장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지만 이른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에 대해선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북한과 미국이 핵 폐기 과정과 경제 원조 문제를 놓고 앞으로 갈등을 보일 여지는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선 큰 그림과 작은 그림, 그리고 기대감의 반영 정도에 따라서 매매 전략을 달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날 남북 경협주는 급등했다. 그리고 남북 화해라는 큰 그림의 기대감은 남아 있다. 다만 주식시장에선 기대감이 빠르게 반영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북한의 태도를 볼 때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회담 전까지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질 수 있다"면서 "다만 단기적인 경협 테마와 중장기적인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시장 개방 시나리오는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경협주의 북미정상회담 기대감에 힘입은 가파른 주가상승은 회담 후에는 재료 소진에 따른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급등한 종목을 추격 매수하기보다는, 지금까지는 주가가 크게 반응하지 않았으나 향후 북한 시장 개방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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